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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만명 기록 넘보는 서도호전…그가 평생 천으로 집 짓는 이유

중앙일보

2026.09.21 13:00 2026.09.21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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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층 로비에 날아갈 듯 설치된 서도호의 ‘서울 집/서울 집/가나자와 집/베이징 집/포항 집/광주 집/ 필라델피아 집’(2012). 뉴스1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층 로비에 날아갈 듯 설치된 서도호의 ‘서울 집/서울 집/가나자와 집/베이징 집/포항 집/광주 집/ 필라델피아 집’(2012). 뉴스1

추천! 더중플: 국립현대미술관 문전성시, 서도호가 말하는 ‘서도호’전
요즘 서울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 앞엔 긴 줄이 늘어서 있습니다. 온라인에서 매진인 ‘서도호’전의 현장 매표 줄입니다. 의류를 비롯한 굿즈도 대부분 완판, 재입고를 기다리는 팬들을 애타게 합니다. 벌써부터 직전 ‘데이미언 허스트: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의 54만 명이 세운 국립현대미술관 역대 최다 관람 기록을 경신할 거란 전망도 나옵니다. 그래서 만났습니다. 서도호(64) 신드롬, 어디서 비롯한 걸까요. 그는 왜 천으로 집을 짓게 됐을까요.

이번 ‘권근영의 아트토크’는 서도호가 말하는 ‘서도호’전 비하인드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더중앙플러스(The Joongang Plus) 구독 후 보실 수 있습니다.
서도호 사진 Gautier Deblonde

서도호 사진 Gautier Deblonde


아버지의 집…“한옥은 내게 카르마”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층엔 옥색 실크로 박음질한 실물 크기 집 모양 조형물이 날아갈 듯 높이 걸려 있다. 서도호의 ‘서울 집/서울 집/가나자와 집/베이징 집/포항 집/광주 집/필라델피아 집’(2012)으로 유년기의 성북동 한옥부터 세계 각지를 떠돌며 살았던 집들을 이어 붙였다. 서도호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것은 천으로 만든 한옥, 그러나 지난 7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만난 서도호는 “한옥은 내게 카르마(업)”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집을 어필하고자 했던 건 아니다. 하필 한옥이었기에 카르마인 것”이라고 말했다. ‘카르마(karma·업)’는 “미래에 선악의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이 된다고 하는,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선악의 소행”을 뜻하는 불교 용어.
실 드로잉 '쫓아오는 집'(2019). 어디를 가든 귀신처럼 쫓아오는 집에 사로잡힌 사람은 서도호만이 아닐 거다. 사진 서도호ㆍSTPIㆍ리만머핀ㆍ빅토리아 미로

실 드로잉 '쫓아오는 집'(2019). 어디를 가든 귀신처럼 쫓아오는 집에 사로잡힌 사람은 서도호만이 아닐 거다. 사진 서도호ㆍSTPIㆍ리만머핀ㆍ빅토리아 미로

모두가 여의도 아파트를 제일로 치던 1970년대, 그의 아버지 서세옥(1929~2020) 서울대 동양화과 교수는 조선시대 마지막 도편수를 데려다 성북동에 창덕궁 연경당을 본뜬 한옥을 지었다. 새마을운동으로 전국의 한옥이 헐리던 시절, 그 고재를 모으느라 6년이 걸렸다. 그렇게까지 한옥을 지은 건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절박해서였다. 서도호의 증조부 서광용은 독립자금에 전 재산을 내놓았다. 조부 서장환은 일제강점기 계룡산 밑에 숨어 한글 학교인 동흥의숙을 세웠다. 정부는 1990년 그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나라가, 우리말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으셨을 거다. 부모님이 한옥을 지으신 것도 6·25를 겪고 나니 우리 문화유산이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근심에서다. 연경당을 복제해 둬야 후에 소실돼도 전통 가옥을 되살릴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서울대 교수 월급을 털어 집을 지으셨다”고 서도호는 돌아봤다. 한옥을 짓는 동안 친척 집 단칸방에서 네 식구가 함께 잤다. 밤이면 두런두런 돈 걱정 하는 부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그에게로 이어졌다.
성북동 한옥에 닥지를 발라 흑연으로 탁본해 전시장에 실물 크기로 지은 '러빙/러빙: 서울 집'(2013–2022). 뉴스1

성북동 한옥에 닥지를 발라 흑연으로 탁본해 전시장에 실물 크기로 지은 '러빙/러빙: 서울 집'(2013–2022). 뉴스1

“미국에 유학 간 1990년대까지 북한에서 미사일 쏘면 사람들이 전쟁 난다며 라면을 사재기했다. 그때 꿈을 많이 꿨다. 성북동 집과 정원이 흰 재가 되어 사라지고, 끝없는 광장 한가운데 내가 서 있는 장면. 그걸 위에서 내려다보는데 너무 외로워 소스라쳐 깨길 반복했다.” 천 작업은 그때 시작했다.

(계속)
혹자는 “한옥이 아니라 주공아파트에서 자랐어도 이런 작품을 할 수 있었을까”라지만, 서도호의 대답은 다르다. “옷은 우리 몸을 감싸는 제일 작고 은밀한, 이동 가능한 공간”이라는 서도호가 왜 옷과 집, 공간에 예민한지, 지난해 테이트 모던에 이은 이번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는 어떻게 다른지 그의 목소리로 들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54만명 기록 넘보는 서도호전…그가 평생 천으로 집 짓는 이유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62052

더중앙플러스: 권근영의 아트토크
파주 작업실에서 전기톱으로 나무를 자르는 조각가 김윤신(91). 우상조 기자

파주 작업실에서 전기톱으로 나무를 자르는 조각가 김윤신(91). 우상조 기자

더 자세한 기사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주소창에 링크를 붙여넣으세요.

5㎏ 전기톱 써는 91세 女작가 ”앞으로 10년 더 작업하겠다“

경기도 파주 문발리, 위잉 하고 전기톱이 돌았다. 허리통만 한 나무에 톱질하는 백발 할머니, 김윤신(91)이다. 5㎏ 무거운 톱이 빠른 속도로 돌아가자 옆에서 보고만 있어도 겁이 났다. 김윤신에게는 일과다.

1935년 원산에서 태어났다. 해방은 만주에서 맞았다. 1948년 38선을 내려올 때 맞은 DDT도, 6·25 때 피난 내려가며 봤던 새빨간 한강물도 잊지 못한다. 파리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성인이 되어서도 조각가 김윤신의 여정은 계속됐다. 올여름까지 호암미술관 회고전으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준 김윤신의 예술, 나무 향과 물감 냄새 가득한 파주 작업실에서 직접 들려줬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09984

전기톱 든 91세 조각가 김윤신 ”네 거나 잘해라“ 매운맛 조언

”내 것도 제대로 못 하는데 남의 것까지 관심을 가지면 어떻게 내 것을 하겠어요? 남을 생각하면 괴롭지 마음이. 그러니까 나대로, 나만이, 충실하게 나를 위해 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파주 작업실 인터뷰에 이어 서울 국제갤러리에서 연 권근영과의 대담. "다른 사람들과 비교가 되는 마음이 들면서 자신감 없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는 관객의 질문에 구순 조각가가 내놓은 ‘매운맛’ 조언이다. 어떻게 살아왔고, 구순에도 조각하고 그림 그리는 힘의 원천은 무엇인지, 총 2시간에 걸친 대화와 청중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핵심만 요약한 20분 현장 영상.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27278
제주 애월 작업실에서 완성작(왼쪽)과 제작 중인 그림 사이에 붓을 들고 선 화가 전현선.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제주 애월 작업실에서 완성작(왼쪽)과 제작 중인 그림 사이에 붓을 들고 선 화가 전현선.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에르메스·루이뷔통 반했다…화가 전현선, 뒤집힌 그림들


지금 서울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올해의 작가상 2026’, 이정우·이해민선·전현선·홍진훤 4명 작가가 신작전을 열고 10월 중 작가와 심사위원들 간의 대화를 거쳐 이 중 1인을 최종 선정한다.

전시장에 나온 전현선(37)의 초록 숲 그림, 설치미술을 방불케 할 대형 회화 설치에 눈길이 갈 관객들을 위해 더중앙플러스가 먼저 그의 제주 작업실에 다녀왔다. 애월의 유자밭 앞 구옥을 고쳐 만든 ‘전현선 월드’, 가족들에게도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다는 비밀스러운 작업실을 독자들에게 활짝 열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42754



권근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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