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삶의 향기] ‘다 잘 먹어요’의 강박

Los Angeles

2026.09.21 18:26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때였다. 옆 테이블에서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가 종업원에게 음식을 주문하면서 한참을 이야기한다. 무언가를 빼 달라거나 간을 조절해 달라는 눈치다.
 
꽤 낯설었다. 필자 세대만 해도 한국에서는 “설렁탕 주세요.”, “불고기 주세요.” 하면 대개 끝이었다. 무엇을 빼 달라거나 간을 달리해 달라고 부탁한 기억도, 주위에서 본 기억도 거의 없다.
 
그 미국 아이가 한국 식당에서 그렇게 주문했다면 어땠을까. 꾸중까지는 아니더라도 “음식 가리지 말고 골고루 먹어야지”라는 핀잔 정도는 듣지 않았을까.
 
매사에 선호가 비교적 분명하고 이를 표현하는 데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아 보이는 미국인들에 비해, 우리는 선호를 분명히 말하면 까다로운 사람으로 보일까 부담스러워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뭐 좋아하세요?”라고 물으면 많은 경우 “저는 다 잘 먹어요.”라고 대답한다.
 
그런데 조금만 더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럼 오늘은 이거 먹으러 갈까요?” “아, 그건 좀….” “못 드세요?” “못 먹는 건 아닌데 다른 걸 먹으면 안 될까요?”  
 
세상에 그 많고 많은 음식을 모두 똑같이 맛있게 먹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 아닐까.
 
친구들이 모여 일식집에 가기로 했다고 가정해보자. 그중 일식을 좋아하지 않는 한 사람이 마침 한식 메뉴가 있어 국밥을 주문한다. 누구에게 피해를 준 것도 아닌데 ‘어지간하면 같이 일식 먹지, 왜 저렇게 까다롭게 굴까’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지 않다.
 
필자도 ‘다 잘 먹는’ 편이다. 실제로 여러 음식을 좋아한다기보다 미각이 둔한 탓이 더 크다. 그럼에도 아구찜은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고, 특정 국가의 음식은 특유의 향 때문에 꺼린다. 필자 역시 ‘뭐든 잘 먹는 사람’을 무난하고 좋은 사람으로 생각해왔고, 그러다 보니 가능하면 그렇게 비치기를 바라왔던 것 같다.
 
좋고 싫어하는 마음은 음식에만 그치지 않는다. 얼마 전 필자가 좋아하는 선배가 학생들의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순간 그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 그 일을 떠올리다가 뜻밖의 사실을 발견했다. 필자는 평소 학생 휴대폰의 일률적 금지에 반대하는 입장이 꽤 분명했다. 그런데 좋아하는 사람이 말하니 생각이 순간 그쪽으로 기울었던 것이다. 반대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말했다면, 나와 같은 입장을 밝혔더라도 괜히 흠부터 찾았을지 모를 일이다.
 
음식의 취향이나 사람에 대한 호오는 어찌 보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취향이 분명하다는 이유로 자신을 까다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취향은 누구에게나 존재하며 오히려 존중되어야 한다. 다만 그 취향 때문에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거나 판단까지 흐려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다 잘 먹어요”라고 말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도 될 것 같다. 진정으로 마음이 자유롭고 편안한 사람은 취향이 흐릿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좋아하지 않는지 알지만, 필요할 때 그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email protected]

양은철 교무 / Won Meditation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