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신규 원자력발전소 건설 여부를 놓고 3개월간 공론화를 진행한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시민참여단의 토론 등을 거쳐 추가 원전의 필요성을 판단하기로 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22일 국무회의에 이런 내용의 ‘원전 공론화 추진계획’을 보고했다. 정부는 단순히 신규 원전을 더 지을지를 찬반 투표에 부치는 대신 미래 전력 수요를 충당할 여러 대안 가운데 원전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향후 3개월간 종합적으로 논의하기로 했다. 공론화 결과는 현재 수립 중인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 반영한다.
정부가 22일 신규 원자력 발전소 건설 여부 등 원전 정책 방향에 대한 공론화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날 부산 기장군 장안읍 고리 1, 2, 3, 4호기 모습. 뉴스1
공론화는 시민참여단의 숙의 토론 방식으로 진행된다. 시민참여단에 원전 관련 학습 기회를 제공한 뒤 숙의 전후 조사를 통해 의견 변화를 확인한다. 전문가 공개토론회와 온라인 의견 수렴도 병행한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를 결정할 당시 활용한 방식과 유사하다.
다만 이번 공론화는 원전 건설 여부를 놓고 찬반만 가르는 방식은 아니다. 정부는 전력 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여러 대안 중 하나로 원전을 놓고 어떤 역할을 할지 등을 종합적으로 논의할 방침이다. 기후부 관계자는 “원전이 우리 전력 시스템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이해해야 필요한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공론화 절차를 주관하는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위한 원전 공론화위원회’는 위원장 1명을 포함해 최대 11명으로 구성한다. 인문사회·과학기술·조사통계·갈등관리·에너지 분야 등의 추천을 받아 원전 이해관계자가 아닌 중립적 인사로 꾸린다. 원전 전문가는 별도 전문위원회를 통해 시민참여단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맡는다. 정부는 공론 결과와 전력 수급과 전력 계통 등에 대한 전문적인 검토를 종합해 전기본을 수립할 계획이다.
신규 원전 공론화에 나선 배경에는 예상보다 빠르게 불어나고 있는 전력 수요가 있다. 3대 메가프로젝트 등을 반영한 2040년 최대 전력수요 전망치는 158.4~165GW(기가와트)로 지난 4월 전망보다 최대 26.8GW 늘었다. 증가분을 설비용량 1.4GW인 APR1400급 대형 원전으로 단순 환산하면 약 19기 규모다.
한성숙 국무총리가 22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으로부터 원전공론화 추진계획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있다.연합뉴스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신규 원전 필요성에 동의하는 응답이 높게 나타났다.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이 코리아리서치인터내셔널에 의뢰해 지난 6월 성인 2000명을 조사한 결과 ‘향후 전력수요 증가에 대비해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전기본에 포함해야 한다’는 응답은 82.9%였다. 신규 원전 건설 자체가 필요하다는 응답도 79.2%였다. 조사 시점은 정부가 3대 메가프로젝트를 발표하기 전이었다.
신규 원전을 둘러싼 의견수렴이 반복된다는 지적도 있다. 2025년 2월 확정된 11차 전기본에는 대형 원전 2기와 소형모듈원전(SMR) 1기가 이미 반영됐지만, 현 정부는 출범 이후 다시 정책토론회와 여론조사를 거쳤다. 정부는 올해 1월 원전 필요성에 동의하는 의견이 80% 이상, 기존 신규 원전 추진에 찬성하는 의견이 60% 이상으로 나타났다며 기존 계획을 추진하기로 했다.
공론화 과정의 공정성을 어떻게 담보할지도 쟁점이다. 시민참여단에 어떤 정보를 제공하고 어떤 설문 문항을 제시하느냐에 따라 숙의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문주현 단국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재생에너지를 큰 폭으로 늘리는 건 공론화를 전혀 거치지 않고 신규 원전만 공론화를 진행해야 하는 지부터 의문”이라며 “원전을 늘려야 할 필요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정부가 직접 판단하지 않고 공론화에 맡기는 것은 정책 결정의 책임을 떠넘기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