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도 습도 높은 더위가 우리 집 에어컨을 힘들게 했지만 해는 이제 많이 기울어 오후가 되면 긴 그림자를 만든다. 미사를 마치고 나와보니 성당 옆 나무 밑에는 떨어진 낙엽이 한 무리를 이루어 굴러다닌다. 가을이 곁에 왔구나 싶다.
가을은 이별, 그리고 죽음을 생각게 한다. 13-14살 무렵이 아니었나 싶다. 밤이면 죽음을 생각하며 울었던 기억이 난다. 이 세상에서 내가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 마냥 슬프기만 했다.
2주 전 시니어 센터의 마작 모임에 가니 사람들이 모여 수군거리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물어보니 줄리가 죽었다고 한다. 지난주에도 나와 같은 테이블에서 마작을 했던 그 줄리가 죽었다고? 문밖이 저승이라는 말이 피부에 와 닿는다. 혼자 살고 있었는데, 목요일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아 지인이 여기저기 연락을 한 끝에 경찰이 찾아가 집에서 그녀를 발견했다고 한다. 그녀는 60대 초반이지만 심장병을 앓고 있었다.
이 모임에서 나는 나이가 적은 편이다. 대부분이 80대 중, 후반이며, 90대도 있다. 다들 한, 두 가지 지병을 가지고 있고, 관절 수술을 했고, 넘어져 재활병원에 드나드는 것도 다반사다. 그러니 이들 중에 누가 죽었다 해도 크게 놀랍지는 않다. 그날도 줄리 이야기가 끝난 후 사람들은 평소처럼 웃고 떠들며 마작을 했다. 1달러를 따고 좋아하고, 2달러를 잃고 아쉬워하며….
나이가 드니 더 이상 죽음이 두렵거나 무섭지는 않다. 도리어 궁금해진다. 과연 죽음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성당에 다니니 당연히 영원한 삶을 믿어야겠지만, 그게 그렇지 않다. 어떤 날은 믿음이 가다가도, 또 다른 날은 과연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다고 해서 걱정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에 대한 걱정이 남았다. 부모자식, 형제자매가 늘 잘 지내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한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들 사이에서 내 자리가 있고 역할이 있었는데, 그 빈자리를 누가 채워줄까?
물론 필요 없는 걱정이다. 31년 직장 생활을 하며 나름 중요한 자리에 있었다고 생각했다. 은퇴하겠다고 하면 누군가는 조금만 더 있어 달라고 나를 잡고, 그만두고 난 후에는 이런 건 어떻게 처리하느냐고, 도와달라고 연락이 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아무도 나를 잡지 않았고, 연락은 오지 않았다.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처음부터 없었듯이, 회사는 잘 돌아갔다. 죽음도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산 놈들은 다 알아서 살아갈 것이다. 내가 죽음을 준비하는 이유는 결국 내 마음 편하자고 하는 일이다. 장지는 진즉에 준비해 두었고, 장례보험도 사놓았다. 죽은 후 화장을 하면 어떻고, 수장을 하면 어떤가. 나는 상관이 없다. 다만, 남은 가족이 나를 보고 싶을 때, 힘들거나 외로울 때, 찾아와 하소연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놓은 것이다.
일 년에 한 번 정도 아내에게 특별한 이메일을 쓴다. 내가 관리하던 것들과 내가 죽은 후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상황이 바뀌니 업데이트를 해주는 것이다. 각종 계좌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정리한 리스트는 첨부파일로 보낸다.
그날 우리가 여느 날처럼 마작을 했듯이, 내가 떠난 후에도 회사가 여전히 잘 돌아갔듯이, 나 죽은 후에도 남은 이들은 잘 지낼 것이다. 그게 세상 돌아가는 이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