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디 카 작전을 주도했던 고(故) 러셀 블레이스델 중령(왼쪽 군복입은 남성)이 당시 고아들을 돌보고 있다. [미공군 제공]
한국전쟁 당시 전쟁터에 남겨진 고아 1000여 명을 구출한 미 공군 군목이 있었다.
재향군인 전문 매체 ‘위아더마이티’는 21일 한국전쟁 당시 제5공군 군목으로 복무했던 고(故) 러셀 블레이스델 중령이 고아들을 제주도로 대피시킨 ‘키디 카 작전’을 재조명했다. ‘키디 카 작전’은 한국전쟁 당시 대표적인 인도주의 구출 작전으로 기록돼 있다.
위아더마이티에 따르면 미네소타주에서 목회자로 활동했던 블레이스델 중령은 본인 역시 고아의 아들이었다. 한국전쟁 발발 후 전쟁터에 방치된 아이들을 외면할 수 없었던 그는 대부분의 부대원이 떠난 뒤에도 서울에 남았다.
블레이스델 중령은 지난 2001년 라스베이거스선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이들을 그대로 두고 떠나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며 “도움이 필요한 아이는 한국인이든 미국인이든, 흑인이든 백인이든 똑같은 아이일 뿐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보조 군목인 멀 마이크 스트랭 하사와 함께 고아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아이들을 인천항으로 옮긴 뒤 배편으로 전장을 탈출시킬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동원할 수 있는 차량은 트럭 한 대뿐이었다. 이들은 서울과 인천을 수차례 오가며 굶주림과 공포에 떨던 아이들을 인천항으로 수송했다. 그러나 정작 아이들을 태울 배는 끝내 도착하지 않았다.
며칠 동안 밤낮없이 애를 태우던 블레이스델 중령은 절망에 빠졌다. 그는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서울 부대 본부를 찾았고, 대부분 철수한 그곳에서 T.C 로저스 준장을 극적으로 만났다.
사정을 접한 로저스 준장은 “C-54 수송기 편대를 동원할 수 있다. 아이들을 김포공항까지 데려올 수 있겠느냐”고 제안했다.
관건은 인천에 모인 고아 1000여 명을 20마일 떨어진 김포공항까지 이동시키는 일이었다. 인천으로 돌아온 블레이스델 중령은 트럭에서 화물을 내리던 해병대원들을 발견하고 차량 지원을 명령했다. 이렇게 확보한 트럭 4대로 아이들을 김포공항까지 무사히 이송했다.
아이들은 이후 1950년 12월 20~21일 C-54 수송기에 탑승해 제주도로 대피할 수 있었다. 제주도에서는 딘 헤스 중령이 마련한 임시 고아원이 이들을 맞이했다.
당시 17세였던 고아 양윤학 씨는 훗날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자신만 생각했을 상황”이라며 “미군들이 한국 어린이들에게 보여준 사랑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우리를 돌보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고 증언했다.
한편, 블레이스델 중령은 지난 2007년 세상을 떠났다. 한국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어린이의 정확한 수치는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아리사 H. 오 작가는 저서 ‘한국의 어린이들을 구하기 위해(To Save the Children of Korea)' 에서 전쟁고아가 약 10만 명에 달했을 것으로 추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