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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중앙일보는 내 인생의 첫사랑

Los Angeles

2026.09.21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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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52주년 특별 인터뷰
미래회계법인 케네스 한 대표

가판대 동전 세며 첫 사회생활
50년 지나도 신문부터 펼쳐
4·29 겪으며 언론 역할 실감
“세상 비추는 시대의 창 되길”
케네스 한 대표가 미주중앙일보 사옥 앞에서 신문을 펼쳐 보고 있다. 50년 전 본지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지금도 신문과 인연을 이어간다.  박낙희 기자

케네스 한 대표가 미주중앙일보 사옥 앞에서 신문을 펼쳐 보고 있다. 50년 전 본지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지금도 신문과 인연을 이어간다. 박낙희 기자

50년 전, 거리 곳곳의 신문 가판대에서 수거된 동전을 세던 한 고등학생이 있었다.
 
당시 15세이던 케네스 한(66) 미래회계법인 대표에게 미주중앙일보는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처음 깨닫게 해준 일터이자, 낯선 미국 땅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해준 넓은 창이었다.
 
한 대표는 미주중앙일보와의 만남을 “세상에 눈을 뜨게해 준 소중한 인연”으로 기억했다.
 
한 대표가 본지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976년이다. 부모를 따라 이민을 온 지 3년째 되던 해였다. 시애틀에서 1년을 보낸 뒤 LA로 이주한 그는 여름방학을 맞아 비영리단체인 오리엔탈 서비스 센터가 주관한 청소년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렇게 미주중앙일보에서 파트타임 근무를 시작했다.
 
주요 업무는 신문 가판대에서 회수해 온 동전을 정산하는 일이었다. 당시 신문 한 부 가격은 25센트. 하루 동안 그의 손을 거쳐 간 동전만 400~500달러에 달했다. 인쇄물 수거나 당일 발행된 신문 정리, 지난 신문 수거 및 적재 작업도 그의 몫이었다. 단순 노동이었지만 한 대표에게는 생애 첫 사회생활이었다.
 
그는 평일 하루 3~4시간씩 일하며 시간당 2달러 가량을 받았다. 그렇게 두 달여 동안 모은 돈으로 당시 유행하던 흰색 컨버스 운동화를 구입했다. 부모의 용돈이 아닌, 자신의 힘으로 번 돈으로 마련한 생애 첫 결실이었다.
 
한 대표에게 미주중앙일보는 단순한 일터 그 이상이었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신문은 이민자들이 주류사회와 고국의 소식을 접하는 유일무이한 창구였다.
 
한 대표 역시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이면 당일 발행된 신문부터 펼쳐 들었다.
 
그는 “미주중앙일보가 아니었다면 내가 사는 지역사회는 물론 고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조차 알기 어려웠던 시절”이라며 “신문을 읽으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떤 이슈가 있는지 배울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의 기억에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는 보도는 1992년 LA 폭동 당시 기사다. 한인공인회계사협회 총무로 활동하던 그는 한인타운 현장에서 불타는 건물과 혼란에 빠진 거리를 직접 목격했다.
 
이후 눈앞에서 펼쳐졌던 현장이 지면에 사진과 기사로 생생히 기록되는 것을 보며 언론과 기자의 막중한 역할을 다시금 실감했다고 한다.
 
한 대표는 미주중앙일보를 자신의 ‘첫사랑’이라고 표현했다. 근무한 기간은 두 달여에 불과했지만,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본지와 끈끈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지금도 길거리나 식당에 신문이 놓여 있으면 미주중앙일보에 가장 먼저 손이 간다”며 “한인사회와 함께 성장하며 지금까지도 한인들에게 큰 힘이 되어주는 매체”라고 강조했다.
 
미주중앙일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던 한 대표가 창간 52주년을 맞은 본지에 바라는 기대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한 대표는 “앞으로의 50년, 그 이상도 공정성을 굳건히 지키며 세상의 흐름을 정확히 짚어주는 ‘시대의 창’ 역할을 변함없이 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송윤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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