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정치인을 몇 명 당선시켰느냐만으로 커뮤니티의 정치력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누가 당선되더라도 한인사회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 더 본질적인 정치력이다.
스티브 강.
스티브 강(사진) LA시 공공사업위원회 의장은 이 같은 강력한 정치력을 구축하는 3대 핵심 요소로 ‘후원·투표·조직력’을 제시했다.
강 의장은 “정치권에서는 특정 커뮤니티가 실제로 결집해 움직이는지, 나아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다음 선거와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를 집중해서 본다”고 밝혔다.
그는 한인 후보에게만 집중하는 기존의 정치 참여 방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인종을 불문하고 한인사회의 현안과 필요성을 깊이 이해하는 ‘친한파(ally)’ 정치인을 발굴해 장기적인 유대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는 취지다.
강 의장은 “진정 힘 있는 커뮤니티란 자당이나 자국 출신 정치인이 많은 곳이 아니라, 누구든 당선자가 커뮤니티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모범 사례로는 유대계의 정치 참여 방식을 꼽았다. 유대계는 자신들의 정책 방향과 뜻을 같이하는 정치인을 발굴한 뒤, 단발성 선거 지원에 그치지 않는다. 당선과 연임, 나아가 의회 내 중진으로 성장할 때까지 장기적으로 관계를 유지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확고히 다진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한인사회에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단순히 후원과 지지에 머무르지 않고, 당선 이후에도 한인사회가 중시하는 정책과 현안을 지속적으로 전달하고 반영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정치 후원 저변 확대 역시 주요 과제로 제시됐다. 일부 ‘큰손’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수백·수천 명의 시민이 25달러, 50달러, 100달러씩 지속적으로 참여할 때 정치권에 전달되는 유권자의 메시지 체감도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강 의장은 “한인사회는 열성적으로 후원하고 지지하면서도, 막상 구체적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요구하는 데는 조심스러워하는 경향이 있다”며 “정치에 참여하는 주권자로서 커뮤니티가 필요로 하는 요구사항을 분명하게 전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선출직 공직자 외에도 다방면의 정치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됐다. 의원실 보좌진, 공무원, 커미셔너, 캠페인 및 정책 전문가 등 정치 시스템 전반에 한인 인재가 진출할 수 있도록 대학생 인턴십부터 공직 진출로 이어지는 육성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결국 이 모든 과정의 출발점은 유권자의 ‘표’다.
강 의장은 “단순한 인구 규모가 저절로 정치력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유권자 등록을 하고, 투표장에 나가며, 조직적으로 결집할 때 비로소 강력한 정치력으로 완성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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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안 LA한인회 회장]
“위기 때 응답할 정치인 배출 필요”
연대 넓혀 정책 결정에 영향력 확보
설령 지역 정치인이 바뀐다 해도 정부가 한인사회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고, 위기가 닥쳤을 때 정치권이 실제로 움직이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진정한 정치력이다.
로버트 안.
로버트 안(사진) LA한인회장은 지난해 직접 목격한 유대계 커뮤니티의 대응 방식을 대표적 사례로 들었다.
지난해 12월, LA한인회가 이스라엘 총영사관과 함께 윌셔 불러바드 템플에서 개최한 공공안전 행사장에 시위대가 난입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발생 48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LA유대인연맹은 시·카운티·주·연방 선출직 관계자들과의 긴급 회의를 소집했다. 회의에는 상당수 정치인이 직접 참석해 상황을 경청하고 지원 방안을 제안했다. 당시 참석한 정치인 대부분은 유대계가 아니었다.
안 회장은 “그 모습을 보면서 진정한 정치력이 무엇인지 절감했다”고 말했다. 커뮤니티의 정치력은 한인 정치인을 얼마나 배출했느냐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정치인을 바라보는 유권자의 기준 역시 달라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선거철에만 한인타운을 찾는 정치인이 아닌, 당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유대 관계를 유지하며 한인사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인물인지 검증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중요한 현안이 발생했을 때 그 정치인이 우리의 전화를 받을 것인지, 우리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경청할 것인지, 나아가 한인사회가 정책 결정 테이블에서 의미 있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판을 열어줄 것인지를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회장은 “한인사회가 한인 정치인 한 명을 더 당선시키려는 방식에서 벗어나 시야를 넓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선출직의 임기는 한정돼 있지만, 강력한 커뮤니티 기관과 인재는 계속 남아 다음 세대로 영향력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타 커뮤니티와의 연대 역시 필요할 때만 찾아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안 회장은 “한인타운 안에만 머물거나 우리끼리만 소통해서는 지속 가능한 영향력을 구축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이어 “커뮤니티의 물리적 규모가 목소리의 크기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얼마나 효율적으로 조직화돼 있는지, 얼마나 꾸준히 정치에 참여하는지, 그리고 미래 세대에 얼마나 투자하는지가 핵심”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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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호 KYCC 관장]
“선거철 ‘일회성 동원’ 끊고 풀뿌리 상설화”
라티노 사회 본떠 생활 밀착형 조직 구축
선거철에만 한시적으로 사람을 모아서는 지속 가능한 정치력을 키울 수 없다. 주거와 교육, 노동 등 주민들이 매일 부딪히는 일상 속 현안을 평소 시민 참여로 연결하는 상설 구조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송정호.
송정호(사진) 한인타운청소년회관(KYCC) 관장은 한인사회가 주목해야 할 모범 사례로 라티노 커뮤니티의 ‘프로모토라(promotora)’ 모델을 제시했다. 이는 지역사회에서 신뢰받는 주민이 이웃과 직접 소통하며 필요한 정보와 서비스를 전달하고, 생활 밀착형 현안을 자연스럽게 시민 참여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송 관장은 “라티노 커뮤니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선거철에만 일회성으로 인력을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이민·주거·노동·교육·공공안전 등 주민들의 일상적 문제를 시민 참여와 유기적으로 연결한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청소년기부터 자연스럽게 시민 참여를 경험하도록 유도하는 문화 역시 귀감이 되는 부분이다. 한인사회도 명문대 진학과 좋은 직업만을 강조하는 데서 나아가, 지역사회 봉사활동부터 대학생 정부 인턴십, 각종 위원회 및 비영리단체 활동으로 이어지는 ‘풀뿌리 사다리’를 구축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선출직 공직에만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송 관장은 “선출직 정치인 배출에만 전념하면 결국 소수의 성공 사례에 의존하는 취약한 구조에 머물 수밖에 없다”며 “시·카운티 위원회와 교육 관련 기구, 정부 자문기구 등 실질적인 정책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단위에도 한인 인재들이 꾸준히 진출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인사회가 해결해야 할 핵심 과제로는 ‘지속성’을 꼽았다. 위기 상황에서는 놀라운 결집력을 보여주지만, 사안이 일단락된 이후에도 조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상설 네트워크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타 커뮤니티와의 연대 강화 필요성도 재차 강조됐다. 그는 “다른 커뮤니티와 경쟁하기보다 ‘공동의 파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며 “타 커뮤니티의 테이블에 초대받기만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파트너로 나서야 한다”고 당부했다.
결국 정치 참여를 선거철 일회성 ‘행사’가 아닌 일상적인 ‘습관’으로 정착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송 관장은 “단순히 ‘투표에 참여하라’고 홍보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자신의 한 표가 가족과 커뮤니티의 삶에 어떤 실질적 변화를 가져오는지 유권자 스스로 이해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