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이란이 위대한 나라가 될 수 있도록 합의할 것인지, 아니면 이란을 신속히 섬멸하고 지옥으로 몰아넣을 것인지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11월 중간선거 직후 이란과 합의가 이뤄질 것이라고도 했다.
트럼프는 22일(현지시간)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유엔 총회 고위급회기 기조연설에서 “나는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며 “이란이 재건하고 훨씬 위대한 나라가 될 수 있도록, 중동이나 아니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나라 중 하나가 될 수 있도록 합의를 할 것인가. 아니면 이란을 신속하게 섬멸하고(annihilate) 다른 나라나 사람들을 죽이거나 파괴하지 못하도록, 살아남을 가능성도, 미래의 번영이나 후세에 대한 희망도 남겨주지 않은 채 지옥으로 몰아넣을 것인가”라고 말했다.
22일(현지시간)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 고위급 회기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연설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그는 이어 “선거가 끝난 직후 이란과 합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중간선거에서 제가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출마하지 않는다”며 “이란 문제를 판단할 때 나는 선거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고려하지 않을 것이다. 선거는 내 머릿속에 들어오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중간선거에서 이란전은 유권자들의 표심을 가르는 중요한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에너지 가격 상승, 인플레이션 등으로 민심은 악화하고 있고, 이란전에 대한 여론의 지지도 줄어들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상원이나 하원을 민주당에 넘겨준다면, 트럼프 행정부 후반기 2년 동안 정책 운용의 동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상당하다.
트럼프는 이란전으로 인해 미군이 비축한 패트리엇과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 사드) 체계 등의 요격 미사일이 크게 줄어들었고, 상당 기간 동안 복원이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에도 또 반박했다. 그는 “비겁자들과 반역자들은 미국에 탄약이 부족하다고 말하고 싶어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라며 “우리는 사용할 수 있다고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탄약을 보유하고 있으며,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최첨단 무기 비축량을 늘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세계 최고의 방산업체들이 18개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면서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자신이 이룬 ‘평화의 업적’을 부각하는 데 주력했다. “우리가 해결한 분쟁에는 캄보디아와 태국, 코소보와 세르비아, 콩고민주공화국과 르완다, 파키스탄과 인도,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간 분쟁이 포함된다”면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서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지도자들과 매우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문제도 해결할 것이며,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빨리 그렇게 될 것”이라며 “그들도 이제 지쳤다”고 말했다.
또 트럼프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축출한 뒤 미국이 베네수엘라 유전 개발 임차권 확보 합의를 맺은 것을 “역사상 가장 큰 합의”로 부르며 “베네수엘라와 미국 모두에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주고 전 세계 에너지 가격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전리품은 승자의 것”이라는 말을 직접 인용하며 “베네수엘라에서 우리가 취한 행동은 미국이 더 이상 서반구 어디에서도 미국을 향한 위협이 발붙이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필요하다면 미국의 핵심 국익을 지키기 위해 누구도 상대할 수 없는 우리의 군사력을 사용할 것”이라는 발언은 사실상 중국과 러시아 등 역외 세력의 영향력을 서반구에서 밀어내고 미국의 통제력을 회복하려는 ‘돈로주의’ 기조를 재확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날 연설에서 트럼프는 한반도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달부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회담할 수 있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혀왔다.
최근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인공지능(AI)의 위험성과 관련해 개발 속도 조절론 등이 제기되는 가운데 트럼프는 “미국은 현재 이곳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많이 논의되는 인공지능을 통제하기 위한 어떠한 세계주의적 구상도 전면적으로 거부한다”고 선언했다. 이번 유엔 총회를 계기로 각급에서 AI 규제와 관련한 다양한 논의가 이뤄지는 데 반대 의사를 표한 것이다.
AI가 인류를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를 또 “사기극”으로 폄하하며 “AI에서 승리하는 자가 승리한다. 현재 미국은 중국을 큰 격차로 앞서고 있으며, 계속 그렇게 유지할 것”이라고 밝혀 기존의 속도전 의지를 다시 밝혔다. AI의 “공식 명칭을 ‘초지능(SI, Super Intelligence)’으로 바꾸려 한다”고도 소개했다.
트럼프는 이날 서명할 예정인 그린란드 합의와 관련해 “우리는 적절한 지역에 대규모 군사력을 배치하는 절차에 즉각 착수할 것이며, 두 곳에 매우 큰 군사 기지를 건설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제 그 어떤 미국의 적대국도 우리의 명시적인 서면 승인 없이는 그린란드에 군사력을 주둔시키거나 민감한 투자를 할 수 없다”고도 강조했다.
국제형사재판소(ICC)에 대한 비판도 이어갔다. 트럼프는 ICC를 “반미 재판소”로 부르며 “ICC 회원국 모두가 이 불량기관에서 즉각 공식적으로 탈퇴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연설 중 적지 않은 부분을 불법 이민 규제, 범죄율 감소, 감세, 규제 완화 등 유엔총회 연설의 성격과는 맞지 않는 “미국의 황금시대”를 부각하는 데 할애했다. 쿠바 정권 변화를 위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갑자기 “쿠바는 미국 공산당과 안티파, 미국민주사회주의자들(DSA) 같은 전복적이고 급진적인 단체들과 관계를 구축해왔다”고 지적, 민주당의 좌파·진보 세력을 겨냥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