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은 끊임없는 ‘희로애락’의 과정이다. 즉 생애 내내 기쁨과 노여움 그리고 슬픔과 즐거움이 연속해서 발생한다. 이런 인생사는 전혀 예상치 못한 쓰나미 파도나, 태풍 혹은 토네이도처럼 아주 크고 세며, 또 매우 거칠게 휘몰아치며 갑자기 밀려들기도 하고, 또는 예측하고 기대할 수 있도록 잔잔한 물결무늬처럼 일렁이며 살며시 다가오기도 한다.
게다가 우리의 인생살이가 환희와 쾌락, 상처와 고통, 비관과 퇴보, 낙관과 치유의 반복적인, 순환적인 과정이기에, 결코 누구에게나 그리 만만하지 않다. 물론 사람에 따라 펼쳐지는 인생 드라마가 상당히 역동적이거나, 아니면 그런대로 순탄한 삶을 이루기도 한다. 하지만 모두들 나름대로의 고민과 고충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인생은 저마다 ‘새옹지마(塞翁之馬)’와 같이 길흉화복의 생생한 상연 무대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희로애락이 반복되는 삶을 심하게 이탈하지 않고서 잘 견뎌내고, 자기 개발도 해 나가며 진보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우선,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로 정립되어야 하는데, 나는 그 무엇보다도 ‘융통성’을 강조하고 싶다. 이에 인생 교훈으로 정말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매사에 무조건 쓸 데없이 괜한 고집을 부리지 말고,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융통성과 관대함을 가져라”인 것이다. 말하자면, 삶의 문제들을 좀 더 낙관적인 자세로, 흘러가는 물처럼 유동적으로 바라보고, 유연하게 대처하자는 의미다.
물론 ‘삶이란 고통 자체다’라는 말에도 일리가 있다. 그래서 나도 오히려 삶을 아름답게, 좀 더 행복하게 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의 어린 시절은 어두웠고, 특히 심리적으로 상당히 불행했었다. 그때는 날마다 부모님의 불화와 싸움에 불안과 공포에 떨며 살았다. 게다가 난 어린 마음에 남의 집은 참 화목하고 행복할 것이라는 ‘망연한 동경심’마저 한동안 품었었다.
사실상 이 세상의 어떤 사람도, 가정도 완벽하지 않으며, 다들 각자의 고통과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열심히 꿈과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희로애락의 삶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고통과 고뇌의 삶을 극복하며 살라고 해주는 위로와 격려 혹은 충고의 말들을 보면, 더 잘 알 수 있다. 예들 들어, “Curate your own life”가 있다. 이는 “너 자신의 인생을 잘 좋게 선별해서 꾸려 나가고, 관리하며 살아라”는 의미다. 또 다른 예는 “Sometimes you have to create your own entertainment”다. 이것은 “당신은 때로는 직접 당신 자신을 즐겁게 할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다. 즉 자신의 삶에 스스로 재미나 멋을 더하며 살라는 것이다. 그리고 아주 흔한 표현으로, “너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언젠가 공원에서 산책로를 걸으며 본 것이, 아직도 하나의 사진처럼 확연히 선명하게 떠오른다. 길 한가운데에 ‘아주’ 고약한 냄새가 나는 동물의 황갈색 대변이 있었는데, 벌써 까맣게 변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더러운 변 바로 위에 ‘아주’ 아름다운 한 마리의 노란색 나비가 곱게 앉아 있었다. 난 그때 매우 짧은 순간이었지만, ‘아, 바로 이게 인생이구나!’ 싶었다. 이렇게 우리 인간의 삶에는 아름다움과 추함, 좋은 것과 싫은 것, 희열과 번뇌, 사랑과 미움, 존경과 증오, 관용과 경멸, 더 나아가 평화와 전쟁이 함께 뒤섞여 공존한다. 결국,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매일마다 희극과 비극의 갈림길에 서서 고민한다. 이에 될 수 있으면, 매사에 ‘긍정적 큐레이터의’ 시각으로 좀 더 아름다운 것들을 선별하고, 선택하면 좋겠다. 이왕이면 심술궂은 것보다는 기쁘게 낙관하면서 사는 것이, 우리의 슬픔과 화, 고통 그리고 비관적 삶을 잘 극복해 나가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된다. (전 위스콘신대 교육학과 교수, 교육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