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한의원 대기실 탁자에는 먹음직스러운 감이 주렁주렁 매달린 작은 감나무 장식이 있다. 어떤 환자분은 일 년 내내 싱싱하고 탐스럽게 열려 있는 감을 신기한 듯 만져보기도 한다. 사실 이 감나무는 옥(玉)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공예품으로, 중국계 캄보디아인인 에이미 부부가 20년 전 개업식 때 선물로 준 것이다.
이 감나무에 얽힌 사연은 이렇다. 2004년 가족 이민으로 미국에 온 나는 주경야독하며 한의사 면허 시험을 준비했다. 당시 사이프러스 집 앞의 에이미 도넛 가게는 새벽잠을 쫓으며 하루를 시작하던 내게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매일 새벽 첫 손님으로 출근 도장을 찍던 나는 백인 동네에서 장사하던 중국계 캄보디아인 주인 부부와 금방 친해졌다. 단골인 내가 스몰 사이즈 커피를 주문하면 에이미는 같은 가격으로 라지 사이즈를 내주곤 했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스몰 사이즈를 고집했고, 남편의 중재로 우리는 가위바위보를 해 커피 사이즈를 결정하는 유쾌한 사이가 되었다.
미국 한의사 면허를 취득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이다. 평소와 같은 시간에 커피를 사러 들르니 에이미가 이마에 땀을 뻘뻘 흘리며 서 있었다. 항상 가위바위보를 내밀던 오른손은 하얀 수건으로 감싼 채,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힘들게 커피를 건네주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묻자, 조금 전 도넛 반죽을 끓는 기름통에 넣던 중 뉴욕에 있는 딸의 전화를 받다가 그만 반죽을 통째로 빠뜨렸다는 것이다. 그 바람에 펄펄 끓는 기름이 오른손 등에 튀어 큰 화상(火傷)을 입었다고 했다. 왜 당장 응급실로 가지 않았느냐고 묻자, 나의 면허 취득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던 에이미는 간신히 고통을 참으며 침 치료로 화상을 고쳐줄 수 없겠느냐고 간절하게 물었다. 화상의 고통이 얼마나 극심한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옛 속담에 ‘불에 덴 자식처럼 징징댄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말이다. 사실 화상 치료에는 침(鍼) 치료가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당장에라도 치료를 해주고 싶었지만, 한의대 의료윤리 수업 때 들은 교수님의 무거운 경고가 떠올랐다. 의료과실 책임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장소에서 진료하는 것은 미국에서 절대 해서는 안 될 일 중 하나라는 생각에, 나는 침으로는 힘들겠다고 비겁하게 둘러대고 커피만 받아 들고나와 차에 시동을 걸었다.
하지만 ‘이렇게 가버리면 에이미는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생각하니 도저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시동을 끄고 차 트렁크에서 늘 싣고 다니던 침통 가방을 꺼냈다. 그러다 이내 ‘아니지, 미국 한의사 면허를 위해 가족 이민까지 와서 얼마나 힘들게 딴 라이선스인데. 만에 하나라도 잘못되면 모든 노력이 수포가 되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결국 다시 침통을 트렁크에 넣고 운전석에 앉아 후진 기어를 넣었다. 그 순간, 도넛 가게 안에서 고통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에이미와 눈이 마주쳤다. 도저히 그대로 출발할 수가 없었다. ‘그래, 이깟 면허가 무엇이란 말인가? 진정한 의사라면 저토록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를 눈앞에 두고 면허 핑계를 대며 비겁하게 도망칠 수 있단 말인가. 의사에게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보다 더 숭고한 사명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다시 침통을 움켜쥐고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 에이미의 손등의 화상 치료를 시작했다.
화상침은 처음 5일 동안 상처 부위인 아시혈(阿是穴)의 화기(火氣)를 빼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풍문(風門)혈, 폐주피모(肺主皮毛)의 폐유(肺兪)혈, 화상해독(解毒)의 축빈(築賓)혈, 혈해(血海)혈, 외관(外關)혈에 1시간 정도 촘촘하게 침을 놓았다. 새벽에 도넛 가게를 찾았던 손님들은 이 진풍경을 보고 놀라며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사실 속으로는 다시 덜컥 겁이 났지만, ‘어차피 저질러진 일, 면허를 뺏기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면 그만이지’ 하고 은근히 배짱도 생겼다. 나는 그다음 날 새벽에도, 또 그 이튿날 새벽에도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5일간 묵묵히 치료를 이어갔다.
5일째 되던 날, 에이미의 손등은 신기하게도 흉터가 거의 없이 깨끗하게 나아 있었다. 더욱 놀라운 일은 매일 새벽 같은 시간에 오던 손님들이 에이미의 화상이 회복되어 가는 과정을 사진으로 찍어 ‘어메이징(Amazing) 하다’며 자신들의 SNS를 통해 퍼뜨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 손님들의 입소문 덕분에 내 한의원은 개업 초부터 환자들이 줄을 이어 늘어나기 시작했다.
해마다 감이 익어가는 이맘때면, 가위바위보를 내밀던 에이미의 흉터 없이 예뻐진 손이 아련하게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