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을 확인한다. 밤사이 쌓인 알림을 읽고, SNS를 열어 짧은 영상을 넘긴다. 출근길에도, 잠시 쉬는 시간에도 손은 자연스럽게 화면을 향한다. 잠깐만 보려고 했던 화면에서 벗어나면 어느덧 상당한 시간이 흘러가 있다.
모든 것이 빠르고 편리해진 시대다. 인공지능(AI)은 몇 초 만에 질문에 답하고, 원하는 노래도 즉시 재생할 수 있다. 사진은 수백장을 찍어도 부담이 없으며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곧바로 삭제하면 된다.
기다림과 불편함은 기술이 해결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디지털 기술의 발전 속에서 흥미로운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일부 젊은 소비자들이 다시 오래된 기술과 느린 생활방식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필름카메라와 LP 음반이 인기를 얻고, 종이책과 손 글씨 등 아날로그 취미 생활이 주목받고 있다.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줄이고 디지털 기기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도 나타난다. 이 같은 움직임은 소비 시장에서도 확인된다. 음반산업협회(RIAA)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내 LP 매출은 10억 달러를 돌파하며 19년 연속 성장했다. 음악 산업도 스트리밍 방식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지만 실물 음반 수요 역시 증가하고 있다.
사람들은 왜 더 편리한 기술을 두고 일부러 불편한 방식을 선택할까. 필름카메라는 스마트폰처럼 촬영한 사진을 즉시 확인할 수 없다. 제한된 필름 한장을 사용하기 위해 구도를 고민해야 하고, 사진이 현상되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예상과 다르게 나온 사진조차 그날의 기억으로 남는다.
LP 역시 마찬가지다. 음반을 직접 꺼내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한 면이 끝나면 뒤집어야 한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이러한 과정이 음악을 듣는 즐거움의 일부다. 종이책 역시 책장을 넘기는 손끝의 감각과 종이의 질감, 한 권을 읽어 내려가는 경험을 제공한다.
최근에는 디지털 공간에서도 일부러 기다림을 만들어내는 서비스가 등장했다. 느린 메신저 ‘캐리어 피지’는 메시지를 보내면 편지를 문 가상의 비둘기가 상대방을 향해 날아가는 앱이다. 비둘기는 두 사람 사이의 실제 거리를 기준으로 시속 약 110마일로 이동한다. 예를 들어 LA에서 뉴욕에 보내려면 약 22시간이 걸린다. 심지어 0.2%의 확률로 비둘기가 날아가다가 죽으면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는다. 클릭 한 번이면 지구 반대편에도 메시지가 즉시 전달되는 시대에 편지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설렘을 재현한 것이다
이러한 선택에는 끊임없는 디지털 자극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도 반영돼 있을 것이다. SNS의 짧은 영상과 끝없이 이어지는 추천 콘텐츠는 다음 화면을 확인하게 만든다. 반면 아날로그는 기다리고, 직접 손을 움직이며, 하나의 경험에 집중할 여지를 제공한다.
그렇다고 과거의 방식이 언제나 더 낫다는 뜻은 아니다. 빈티지 디자인에 대한 취향과 수집의 즐거움도 아날로그 인기의 이유일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유행 역시 SNS를 통해 확산되고 새로운 소비의 대상이 된다.
어쩌면 사람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과거로 돌아가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기술이 정해 놓은 속도에서 벗어나 자신의 시간을 스스로 선택할 기회를 찾는 것일 수 있다.
빠른 것이 당연한 시대지만 느림이 뒤처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필름 한장에 담긴 결과를 기다리고, LP 한 면을 끝까지 듣고, 종이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는 시간, 그 안에서 사람들은 효율과 속도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즐거움을 발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되찾고 싶은 것은 오래된 물건이 아니라 서두르지 않고 순간을 온전히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