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추석 하와이 최초의 한국 독립영화제가 열린다. 25일부터 27일까지 사흘간 호놀룰루 미술관에서 추석 축하 행사로 열리는 ‘인티밋 코리아(Intimate Korea)’다. ‘한란’ ‘사람과 고기’ 등 한국 독립영화를 상영하고 음악 다큐멘터리 ‘하와이 연가’(2024) 시네마 콘서트를 진행한다. ‘하와이 연가’는 1903년 조선에선 ‘포와’로 불렸던 하와이에 첫 이민선이 닿으며 시작된 120여년 하와이 한인 이민사를 담았다. 신랑 사진 한 장 보고 17세에 이역만리 하와이로 시집 온 ‘사진신부’ 임순옥씨의 삶, ‘하와이의 소록도’(한센병 환자 격리지구) 칼라우파파에서 외롭게 살다 간 한인들의 흔적 등이다.
오는 25일 추석 연휴 하와이 최초의 한국 독립영화제를 주최하는 이진영 감독은 하와이 한인 이민사를 다큐멘터리로 꾸준히 제작하며 세상에 알려왔다. 그를 지난달 27일 서울 을지로 한 호텔에서 만났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하와이 연가’ 제작·연출자이자, 이번 영화제를 호놀룰루 미술관과 공동 주최하는 이진영(46) 감독을 지난달 말 만났다. 신작 준비 차 방한한 이 감독은 “기존 이민사 박물관이나 하와이 역사 다큐는 한인 사탕수수밭 노동자들의 노예계약 등 힘든 이야기만 다루는데 한인 3세 게리 박 작가가 자신의 할머니 임옥순씨 실화를 담은 사진신부 이야기엔 할머니의 정이 가득했다. 매일 고되게 일하면서도 자식·손자를 재우며 느낀 행복, 일당을 쪼개 고국에 독립운동 자금을 보탠 한인들의 주체적이고 당당한 모습을 비추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번 영화제의 시네마 콘서트 제목에 하와이 원주민 언어로 ‘조건 없는 사랑’을 뜻하는 ‘알로하(Aloha)’를 넣어 ‘알로하 & 아리랑’로 정한 것도 그런 이유다.
이진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하와이 연가'는 한인 3세 개리 박(Gary Pak) 작가의 실제 할머니인 '사진 신부' 임순옥씨 일화도 담았다. 1912년, 17세 나이에 ‘사진 신부’가 되어 ‘포와’라고 불리던 낯선 땅 하와이로 건너가 남편과 열 명의 자녀를 낳아 키웠다. 이 감독은 당시 하와이 한인 노동자들이 고국에 보낸 독립자금이 “지금의 화폐 가치로 무려 60억원에 달한다”며 “이들에게는 자신의 뒤를 잇는 아이들이 식민지 조국의 백성으로 살지 않게 하겠다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사진 나우프로덕션
서울서 나고 자라 이화여대 언론정보학과를 나온 그는 결혼 직후인 2005년 스물다섯에 하와이로 이민을 갔다. 현지 언론사 기자·앵커로 일하며 만난 하와이 최초 한인 은행 설립자 김창원씨의 말이 영화를 배운 적도 없던 그를 흔들어놨다.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사랑을 받았다”는 말이었다. 하와이 이민 1세대인 부모 세대의 고충을 보고 자란 김씨는 지금 우리의 삶은 그런 선대의 희생 없이 불가능했다고 했다.
낯선 하와이에서 내내 한계에 부딪힌 기분이었다는 이 감독은 “누군가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이 이렇게 많은 희생의 결과로 주어진 귀한 존재란 걸 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한인 이민자들의 이런 역사가 제대로 기록된 적 없음에 충격 받은 그는 2012년 비영리 제작사 나우 프로덕션을 설립했고, 2021년엔 다니던 회사에서 나와 본격적인 다큐 제작에 착수했다. 미국서 태어나 영어가 익숙한 두 딸에게 전하고픈 이야기를 다큐에 새겼다.
첫 다큐 ‘무지개 나라의 유산’(2021)은 김창원씨를 비롯해 미주 최초 한국계 시장에 당선된 해리 김 빅아일랜드 3선 시장, 미주 최초 한국계 대법원장 문대양 등 초기 한인 이민자들의 직계후손 6인의 인터뷰를 담아 대한민국 국가기록원 국가기록물로도 선정됐다. 이어 ‘하와이 연가’까지 두 다큐는 미국 공영 PBS에 방영,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OTT)에 출시되며 세상에 한인 이민자의 역사를 알렸다.
이진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하와이 연가'에는 한국전쟁 고아이자 미국 입양아로 자란 어머니를 둔 세계적인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도 연주에 참여했다. 스스로도 첼로를 해왔다는 이 감독은 음악의 힘을 믿는다고 거듭 말했다. 사진 나우프로덕션
이 감독은 이후 “내가 속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다. 문 대법원장이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이들을 위한 최초의 법정 통역 프로그램 개설을 이끌었던 것처럼 말이다. 차기작도 한인 디아스포라에 관한 다큐라는 이 감독은 “세계 곳곳의 한인 이야기를 찾아 관객들에게 음악과 함께 전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