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외솔한글한마당 행사가 열린 울산시 중구 문화의 거리. 대형 훈민정음 모형이 설치돼 눈길을 끈다. 연합뉴스
“이번 한우는 마블링이 좋네.” 추석 밥상에서 흔히 나올 법한 말이다. 그런데 ‘마블링’을 우리말로 바꿔 말한다면 어떨까.
울산 학생들이 내놓은 답은 ‘고기 무늬’다. “이번 고기는 고기 무늬가 참 좋네”라고 바꿔볼 수 있다는 것이다. 추석 선물을 열어보는 ‘언박싱’은 ‘설렘 개봉’, 명절 연휴 가족 여행에서 묵는 ‘게스트하우스’는 ‘길벗쉼터’나 ‘손님사랑방’이라고 부를 수 있다. 처음 들으면 낯설지만 모두 울산 학생들이 고민해 만들어낸 새로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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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째 이어진 ‘우리말 다시쓰기’
울산시교육청이 2021년 시작한 ‘우리말 다시쓰기’가 올해로 6년째를 맞았다. 학생들이 일상에서 무심코 사용하는 외국어, 외래어, 신조어, 줄임말을 찾아 쉽고 재미있는 우리말로 직접 바꿔보는 공모전이다. 매년 상·하반기 두 차례 열리는데, 2021년부터 최근까지 학생들이 우리말로 다듬은 제시어는 100여개에 이른다.
우리말 다시쓰기는 울산시교육청이 매년 10여개의 신조어를 제시하면 학생들이 우리말로 자유롭게 바꾸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각 학교에 공모전 온라인 주소를 보내면, 그 주소로 학생이 직접 접속해 참여한다.
울산지역 학생들이 우리말 다시쓰기에 나섰다. 숏폼, 트라우마, 입덕 같은 무심코 쓰이는 외래어.신조어가 학생들의 손을 거쳐 한글로 새 옷을 입고 있다. 자료 울산시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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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팁=알짜 정보, 스포=미리 알림
학생들의 아이디어는 톡톡 튄다. 2024년에는 예약해 놓고 나타나지 않는 ‘노쇼’를 ‘유령예약’이나 ‘잠수예약’으로, 지난해에는 짧은 영상을 뜻하는 ‘숏폼’을 ‘한 뼘 영상’, ‘트라우마’는 ‘마음 멍’, ‘브레이크 타임’은 ‘숨고름 시간’으로 다듬었다.
지난해부터는 참여 대상을 초등학생까지 넓혔다. 상·하반기를 합쳐 초·중·고 7382명이 참여했다. 일상에서 흔히 쓰는 ‘꿀팁’은 ‘알짜 정보’, 미리 내용을 알려주는 ‘스포’는 ‘미리 알림’으로 바꾸자는 의견 등이 나왔다. 올해 상반기 공모에는 휴대전화 뒤에 붙이는 ‘그립톡’을 ‘손맛고리’나 ‘쥠고리’, 영화나 드라마가 끝난 뒤 나오는 ‘쿠키 영상’을 ‘꼬리영상’ 등으로 다듬어 눈길을 끌었다.
‘우리말 다시쓰기’는 단순히 외국어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평소 무심코 쓰던 말의 뜻을 학생 스스로 되짚어 보고, 같은 의미를 더 쉽고 정확한 우리말로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해 보는 데 의미가 있다. 울산시교육청은 공모전을 통해 다듬은 말을 공문서와 보도자료 등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공공언어 개선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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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솔 고향 울산, 지역적 배경
울산 출신 독립운동가이자 한글학자인 외솔 최현배 선생을 기념하기 위해 울산에 지어진 기념관. 연합뉴스
이러한 울산의 우리말 사랑에는 지역적 배경도 있다. 울산은 ‘한글이 목숨’이라는 글을 남긴 국어학자 외솔 최현배(1894~1970) 선생의 고향이다. 울산에서 태어난 외솔은 일제강점기 조선어학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우리말과 한글을 지키는 데 힘썼다. 해방 이후에는 한글 가로쓰기 보급에도 앞장섰다.
울산 곳곳에서는 지금도 외솔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울산은 2015년 외솔 생가와 기념관 일대 1㎞를 ‘한글거리’로 지정했다. 한글 간판과 한글 문패 사용을 장려하고, 한글날에는 ‘외솔한글한마당’도 연다. 앞서 2014년에는 공공기관의 올바른 국어 사용 등을 담은 ‘국어 진흥 조례’도 마련했다.
서울 장충단공원 외솔 최현배 박사의 기념비. 중앙포토
울산시교육청 관계자는 “학생들이 외솔 최현배 선생의 우리말 사랑 정신을 이어받아 바른말과 글을 사용하는 데 앞장서는 시민으로 성장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