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경찰차 타고 온 매킬로이…정말 시계 탓이었을까

중앙일보

2026.09.23 16:15 2026.09.23 22:55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2012년 메디나에서 기적의 역전승을 거둔 유럽 라이더컵팀. 로이터=연합뉴스

2012년 메디나에서 기적의 역전승을 거둔 유럽 라이더컵팀. 로이터=연합뉴스

경광등이 번쩍였고 사이렌이 울렸다. 경찰차 조수석에 탄 사내는 범인이 아니었다. 세계 골프 최고 스타 중 한 명인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였다. 운전대는 롬바드 경찰서장 팻 롤린스가 직접 잡았다. 목적지는 미국 시카고 교외의 메디나 컨트리클럽이었다.

평소에도 20분 걸리는 길인데, 그날은 대회 차량으로 꽉 막혀 있었다. 서장은 미리 무전을 쳐 길을 텄고, 16분 만에 골프장에 닿았다. 도중에 급제동을 한 번 세게 밟은 뒤 옆을 보니 매킬로이는 넋이 나가 있었다.

14년 전인 2012년 9월 30일, 라이더컵 마지막 날 아침이었다. 유럽팀은 매킬로이 티오프 45분 전에야 그를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유럽팀은 공황에 빠졌다. 매킬로이는 골프장에서 약 20㎞ 떨어진 호텔 방에 있었다.


5분 늦으면 첫 홀을 내주고, 10분 늦으면 매치에서 패한다. 다행히 시간 내에 도착했다. 매킬로이는 건성으로 스트레칭을 몇 번 했고, 퍼팅은 다섯 번 해본 게 전부였다. 소동은 미국 NBC 전파를 타고 생중계됐다.


매킬로이의 에이전트는 “전날 밤 골프채널에서 자신의 티타임을 12시 25분으로 봤는데, 그게 동부시간이었다”고 설명했다. 시카고는 중부시간대다. 1번 홀 시카고 관중들은 “중부 표준시! 중부 표준시!”를 외쳤다. 골프 역사상 가장 요란한 시차 적응 실패였다.


사건은 그렇게 해프닝으로 정리됐다. 그런데 올해 나온 앨런 쉽넉의 매킬로이 전기 『로리(Rory)』는 그날 아침을 조금 다르게 비춘다. 정말 시차 탓이었을까.


2012년 메디나에는 에리카 스톨이라는 눈에 띄는 미인이 있었다. 미국프로골프협회(PGA of America) 선수 이동 차량 담당 직원이었다. 매킬로이도 그를 눈여겨봤다. 당시 대회에서 일한 PGA 직원들에 따르면 매킬로이는 스톨에게 반했다. 한 직원은 “가진 매력을 총동원하고 있었다”고 했고 “로리가 아직 성공 못 했나?”라는 말이 직원들 사이에 유행어처럼 돌았다고 한다.

매킬로이가 라이더컵 승리 파티에서 대형 알람 시계를 메고 기뻐하고 있다. 사진 스테파니 웨이

매킬로이가 라이더컵 승리 파티에서 대형 알람 시계를 메고 기뻐하고 있다. 사진 스테파니 웨이


그리고 마지막 날 아침, 매킬로이가 사라졌다.


쉽넉은 시카고에서 일주일 가까이 지낸데다 지원 스태프들도 있는데 매킬로이가 정말로 시간대를 헷갈렸던 걸까라고 의문을 제기한다. 관계자들의 기억은 더 노골적이다. “그날 밤 저녁 자리에서 PGA 직원들은 NBC를 비롯한, 언론에 나온 이야기를 대놓고 비웃었다. 기자들이 그 헛소리에 다 넘어갔다는 게 믿기느냐는 식이었다.”


관중도 뭔가 눈치챈 모양이었다. 매킬로이 경기 후반 미국 팬들 사이에서 이런 구호가 터져 나왔다. “그녀는 그럴 가치가 있었나, 짝, 짝, 짝짝짝.”


매킬로이는 경기를 잘 했다. 4시간 전만 해도 경찰서장 차 조수석에 앉아 있었던 매킬로이는 키건 브래들리를 꺾었다. “그 대회에서 나의 최고의 골프를 했다”고 말했다.

유럽은 매킬로이의 승점을 발판으로 싱글 매치 12경기에서 무려 8.5점을 쓸어 담아 14.5-13.5로 승부를 뒤집었다. 1999년 브루클린에서 미국이 세운 라이더컵 최다 점수 차(4점) 역전과 같은 기록이고, 원정 경기로는 사상 최대 역전이다. 골프계는 이 경기를 ‘메디나의 기적’이라 부른다.

2025년 레이스 투 두바이 우승 트로피 앞에 포즈를 취한 로리 매킬로이 가족. AP=연합뉴스

2025년 레이스 투 두바이 우승 트로피 앞에 포즈를 취한 로리 매킬로이 가족. AP=연합뉴스


우승 파티에서 유럽 캡틴 호세 마리아 올라사발은 매킬로이에게 알람시계를 선물했다. 그러나 매킬로이가 메디나에서 받은 가장 큰 선물은 알람시계가 아니었다. 그는 2017년 스톨과 결혼했고, 3년 뒤 딸 포피를 얻었다. 2024년 이혼 소송을 냈다가 한 달 만에 거둬들이는 굴곡도 겪었지만, 두 사람은 지금도 함께다.

메디나에서 매킬로이가 ‘작업’에 열을 올리던 그 주, 그에게 테니스 스타 캐럴라인 보즈니아키라는 연인이 있었다는 건 여기서만 하는 얘기다. 세계 골프와 테니스를 대표하는 커플이었으니 전 세계가 아는 비밀이긴 했다.

14년 만에 메디나에 다시 세계 정상급 골퍼들이 모였다. 이번에는 라이더컵이 아니라 24일 개막한 프레지던츠컵이다. 첫날 포볼 경기에서 임성재는 호주 교포 이민우와 함께 선봉으로 출격, 25일 오전 1시35분 스코티 셰플러와 맞붙는다. 팀의 필승조로 꼽히는 김주형과 김시우는 오전 2시47분 마지막 조로 경기한다.

시카고=성호준 골프전문기자

매치 1 (25일 새벽 1시 35분): 이민우 / 임성재 vs 스코티 셰플러 / 샘 번스


매치 2 (25일 새벽 1시 53분): 마쓰야마 히데키 / 히사쓰네 료 vs 캐머런 영 / 잰더 쇼플리


매치 3 (25일 새벽 2시 11분): 코리 코너스 / 니코 에차바리아 vs 저스틴 토머스 / 잭슨 코이번


매치 4 (25일 새벽 2시 29분): 라이언 폭스 / 애덤 스콧 vs 윈덤 클라크 / 콜린 모리카와


매치 5 (25일 새벽 2시 47분): 김주형 / 김시우 vs 크리스 고터럽 / 패트릭 캔틀레이







성호준([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