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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골프 선수들은 왜 ‘비신사’가 됐나 [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

중앙일보

2026.09.24 13:26 2026.09.24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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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대회에서 타이거 우즈를 연상시키는 세리머니를 보인 김주형. EPA=연합뉴스

2022년 대회에서 타이거 우즈를 연상시키는 세리머니를 보인 김주형. EPA=연합뉴스

“너 나 치겠다.”

2024년 캐나다 로열 몬트리올에서 열린 프레지던츠컵 첫날, 미국팀 부캡틴 케빈 키스너가 인터내셔널팀 부캡틴 카밀로 비예가스 면전에서 한 말이다.

이날 경기가 거칠었다. 김주형과 스코티 셰플러는 먼거리 퍼트를 집어 넣고 서로 상대를 자극하려는 듯 거칠게 포효했다. 8번 홀 그린에서 비예가스는 김주형과 임성재에게 다음 홀로 이동하라고 했다. 셰플러와 러셀 헨리의 퍼트가 남아 있을 때였다. 다음 홀 티잉구역에서 키스너가 “가장 비신사적인 행동”이라고 항의했고 경기가 끝난 뒤 두 사람이 다시 맞붙었다. 그 장면이 TV에 그대로 잡혔다.

김주형은 “미국 선수들이 우리에게 욕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폭로했다. 김시우는 가파른 비탈에서 친 플롭샷을 홀에 넣은 뒤 NBA 스타 스테픈 커리의 ‘나이트 나이트(잘 자라)’ 세리머니를 했다. “게임 끝났다, 이제 가서 자라”는 의미다.

한국 선수들이 매너에서도 졌다는 반응이 나왔다. 미국보다 오히려 한국 팬들이 더 불편해했다. 골프를 ‘신사의 스포츠’로 배워 온 우리에게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런데 팀 매치플레이는 조금 다른 눈으로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평소 보는 스트로크 대회와는 규칙도 분위기도 전혀 다른 게임이기 때문이다.

첫째, 심판이 있느냐 없느냐다.

스트로크플레이 골프의 본질은 ‘자기 심판’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골프장은 너무 넓어서 심판이 모든 걸 볼 수 없다. 정직이 없으면 경기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골프에서 정직은 미덕 이전에 시스템이다.

축구나 농구는 다르다. 공이 라인 밖으로 나가면 두 선수가 동시에 손을 들어 “내가 안 건드렸다”고 주장한다. 이걸 거짓말이라고 비난하지 않는다. 최종 판정권을 가진 심판이 있어서다. 심판이 있는 경기에서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신고할 개인의 도덕적 의무가 애초에 생기지 않는다. 선수의 주장은 거짓말이 아니라 변론이다. 그래서 이런 행동은 ‘치팅’이 아니라 ‘게임스맨십’으로 불린다. 잘 속이면 “영리하다”, “노련하다”는 칭찬까지 듣는다.
2024년 대회 포볼경기에서 함께 한 임성재(오른쪽)와 김주형은 스코티 셰플러와 신경전을 벌였다. AP=연합뉴스

2024년 대회 포볼경기에서 함께 한 임성재(오른쪽)와 김주형은 스코티 셰플러와 신경전을 벌였다. AP=연합뉴스


둘째, 나를 위해서냐, 우리를 위해서냐다.

골프에서 거짓 신고로 얻는 이익도, 비난은 모두 자신의 몫이다. 거짓이 발각되면 치명상을 입는다. 반면 팀 스포츠에서 기만은 “팀을 위해서”라는 명분을 얻고 충성심의 증거로 읽힌다. 라이더컵과 프레지던츠컵은 룰북상으로는 골프지만 본질은 축구, 농구 같은 팀 스포츠에 가깝다. 레퍼리가 매 조를 따라 걷는다. 스코어보드에는 ‘나’가 아니라 팀 성적이 찍힌다.

그래서 팀 매치플레이로 넘어가는 순간 골프의 장르가 바뀐다. ‘심판 없이 지켜지는 명예의 게임’이 ‘심판을 사이에 둔 대결의 게임’이 된다. 컨시드를 줄지 말지는 에티켓이 아니라 심리전이다. 세리머니의 강도와 타이밍도 전술이다.

김주형, 김시우, 임성재의 행동은 스트로크플레이의 윤리로 보면 일탈이다. 그러나 팀 매치플레이의 문법으로는 지극히 정상이고, 오히려 권장되는 행동이다.

지난해 라이더컵에서 승리한 로리 매킬로이 등 유럽 선수와 관중들이 환호하고 있다. 라이더컵은 수많은 비매너 갈등이 쌓여 꼭 이겨야 하는 게임이 됐다. AFP=연합뉴스

지난해 라이더컵에서 승리한 로리 매킬로이 등 유럽 선수와 관중들이 환호하고 있다. 라이더컵은 수많은 비매너 갈등이 쌓여 꼭 이겨야 하는 게임이 됐다. AFP=연합뉴스

프레지던츠컵만의 사정도 있다.

라이더컵은 유럽과 미국의 대결이다. 두 진영은 수백 년에 걸친 지정학적·문화적 서사를 공유한다. 언어도, 투어 생태계도, 정체성도 뚜렷하다. 그 진영 감정이 2년마다 저절로 불붙는다.

인터내셔널팀은 한국, 호주, 남아공 등 여러 나라 선수들의 연합군이다. 공통의 언어도 역사도 없다. 왜 저들과 싸워야 하는지 이유가 선명하지 않다. 그래서 프레지던츠컵은 긴장감이 떨어지고 흥행도 약하다.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게 신경전이다. 스코어보드만으로는 생기지 않는 이야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이 이런 마찰 속에서 비로소 생긴다.

게다가 프레지던츠컵은 전력 차가 크다. 미국은 역대 전적 13승 1무 1패로 압도적이다. 결과가 예상돼 흥미가 떨어지니 존폐 논란까지 나온다.

라이더컵은 전통의 라이벌이라는 토대 위에 몰상식한 비매너 사건이 쉼 없이 쌓였다. 1991년 키아와 아일랜드의 ‘해변의 전쟁’ 1999년 ‘브루클린 전투’ 등 셀 수도 없다. 최근에도 2023년 ‘모자 게이트’, 지난해 공식 아나운서가 관중들에게 매킬로이 욕설 유도 사건 등 사건 투성이다.

그 갈등이 켜켜이 쌓여 라이더컵은 한일전처럼 절대 져서는 안 되는 게임이 됐다.

올해 프레지던츠컵이 25일(한국시간) 미국 시카고 인근 메디나 골프장에서 막을 올렸다. PGA 투어가 가장 바라는 건 에티켓 논란일지도 모른다.

시카고=성호준 골프전문기자


성호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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