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盧 헌신짝처럼 버린 건 좌파” 17년 만에 침묵 깬 이명박

중앙일보

2026.09.24 14:00 2026.09.24 14:42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

이명박 회고록

」

「

제38회 노무현 수사를 말하다

」

" 아니, 이명박 의원님 아니십니까. 반갑습니다. "

1996년 여름, 서울 종로구의 유명 삼계탕집에 들어서던 나를 향해 누군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노무현 전 의원이었다. 우리는 그해 4월 15대 총선에서 종로 지역구에 나란히 출마한 사이였다. 나는 당선자, 그는 낙선자였다. 그런 그를 내 지역구 맛집에서 우연히 만나니 나 역시 반가웠다.

" 노 의원님 아니십니까. 반갑습니다. 식사하러 오셨나 보죠? "

그의 말은 뜻밖이었다.

" 아닙니다. 여기는 제가 개인적으로 자주 오는 곳입니다. "

알고 보니 그의 팬이었던 그 식당 주인이 “사무실처럼 사용하시라”며 방을 하나 내준 거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와 별다른 친분이 없었던 나는 이후 그 식당에서 여러 번 그와 마주치면서 꽤 가까워졌다. 그러면서 솔직하고 털털하며 인간적이던 그에게 호감을 가지게 됐다.

그는 그 ‘식당 사무실’을 발판 삼아 열심히 지역구를 갈고 닦은 덕택에 내 사퇴 이후 열린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종로 국회의원이 됐다. 되짚어 보면 참으로 묘한 인연이다. 내 국회의원 자리를 물려받은 그가 대통령 자리를 나에게 물려줬으니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8년 2월 25일 17대 대통령 취임식을 마친 뒤 단상을 내려오며 대화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명박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8년 2월 25일 17대 대통령 취임식을 마친 뒤 단상을 내려오며 대화하고 있다. 중앙포토

그로부터 13년 뒤인 2008년 초, 대통령 당선인이 된 나는 삼청동 안가에서 한 고위 공직자를 만났다.

" 당선인님, 새 정부가 출범하면 사직하겠습니다. "

당시 검찰의 최고 책임자, 임채진 검찰총장이었다. 내 첫 검찰총장인 그는 또한,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검찰총장이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17대 대선(12월 19일)을 한 달도 남겨놓지 않았던 2007년 11월 24일 그를 검찰총장으로 임명했다.

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10년 만에 보수 정부가 들어서자 임 총장은 최단명 총장이 될 위기에 처했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고 싶어 하는 건 모든 정권의 본능이다. 특히 검찰총장 같은 권력기관 총수는 자기 사람으로 앉히는 게 상례였다. 임 총장도 당연히 짐을 싸야 한다고 생각한 거다. 그는 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당선인님, 저는 현 정부에서 임명된 검찰총장입니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당선인께서 원하시는 분을 새 총장으로 임명하는 게 맞을 듯합니다. 저는 사직하겠습니다. "

나는 그를 바라보고는 차분히 말했다.

" 뜻은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사직은 수용할 수 없습니다. 나는 임 총장을 유임시킬 작정입니다. "

임 총장이 놀란 표정으로 반문했다.

" 정말이십니까. 왜 저를 유임시키려 하십니까. "

내가 그 이유를 설명하자 그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임채진 검찰총장이 2008년말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09년 업무보고에 앞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명박 대통령과 임채진 검찰총장이 2008년말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09년 업무보고에 앞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좌파 진영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와 그 직후 일어난 비극의 책임을 전적으로 나에게 지워왔다. 내가 검찰 수사를 배후에서 총지휘하면서 그를 압박하고 핍박해 결국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게 그들 주장의 요지다.

그러나 당시 노 전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고립시킨 것은 그들이었다. 수사가 시작되자 민주당을 비롯해 좌파 언론들은 노 전 대통령을 향해 날 선 비판과 야유를 쏟아냈다. 내가 아는 노 전 대통령은 검찰 수사나 상대 정파의 비난에는 절대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나, 자기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당한 것은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을 거다.

그러던 사람들이 노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자, 그 화살을 내게 돌린 것이다. 나는 오랜 세월 일체의 반박 없이 그 비난과 억측을 묵묵히 감내했다.
백원우 민주당 의원이 2009년 5월 29일 경복궁 흥례문 앞 광장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도중 이명박 대통령에게 "사과하라"고 소리치고 있다. 중앙포토

백원우 민주당 의원이 2009년 5월 29일 경복궁 흥례문 앞 광장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도중 이명박 대통령에게 "사과하라"고 소리치고 있다. 중앙포토


그렇게 17년이 흘렀다. 그사이 그 사안을 보는 시각은 분화했고 성숙해졌다. 물론 여전히 노 전 대통령을 성역화, 순교자화하면서 일체의 다른 해석을 허용치 않으려는 이들이 좌파 진영의 주류인 게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노무현의 죽음을 이용하는 세력”이라고 그들을 비판하면서 객관적 분석을 요구하는 이들이 좌파 진영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공세의 대상이던 보수 진영에서 이 사안에 대해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도 의미 있는 변화다.

나 역시 이제는 그때의 일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노 전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박해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를 둘러싼 국세청 세무조사와 검찰 수사는 결코 내 뜻이 아니었다. 나는 검찰이 과잉 수사를 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직간접적 제어를 시도했고, 노 전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으로서 최대한의 예우를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 주변에 있었던 이들은 진실을 알고 있을 거다. 내가 얼마나 그를 보호하려 했으며, 얼마나 예우를 갖추려 노력했는지 말이다.

그중 한 명이 당시 변호인이던 문재인 전 대통령일 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검찰 출석을 앞둔 2009년 4월 24일 변호인인 문재인 전 비서실장이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 사저에서 대책을 논의한 뒤 귀가하고 있다. 중앙포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검찰 출석을 앞둔 2009년 4월 24일 변호인인 문재인 전 비서실장이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 사저에서 대책을 논의한 뒤 귀가하고 있다. 중앙포토


※ 이명박 전 대통령이 17년간의 침묵을 깨고 2009년의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및 서거에 대해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 전 대통령은 또한, 노 전 대통령 서거 책임을 자신에게 지운 진보 진영을 작심한 듯 비판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URL 링크를 복사해 주소창에 붙여넣으세요.

“노무현 지키라고 했다”…MB, 17년 만에 침묵 깼다 ①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57364

MB “노무현 버린 건 좌파…문재인도 진실 알 거다” ②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58446

‘이명박 회고록’ 또 다른 이야기
“인정하자, 보수는 참패했다” 이명박, 13년만에 처음 입 열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15706

박정희 “이제 그만합시다”…서거 며칠 전 MB에 온 ‘천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26042

尹, 수감중인 MB에 한 부탁 “UAE 국왕에게 편지 써달라”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15970

“그말 하니까 눈물이 다 나네” MB 울린 ‘한반도 대운하’ 좌절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16349

“내가 박근혜 알잖아”…박정희 조카사위, JP는 MB 밀어줬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60333

“MB 눈 찢어진 혼외자 있다” 루머…김윤옥 이 말에 빵터졌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62268

MB “당신 뭐하고 다니는거야?” 정두언 결별 부른 ‘수첩 사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63370

서승욱.박진석.김상진.김기정.왕준열([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