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여름, 서울 종로구의 유명 삼계탕집에 들어서던 나를 향해 누군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노무현 전 의원이었다. 우리는 그해 4월 15대 총선에서 종로 지역구에 나란히 출마한 사이였다. 나는 당선자, 그는 낙선자였다. 그런 그를 내 지역구 맛집에서 우연히 만나니 나 역시 반가웠다.
" 노 의원님 아니십니까. 반갑습니다. 식사하러 오셨나 보죠? "
그의 말은 뜻밖이었다.
" 아닙니다. 여기는 제가 개인적으로 자주 오는 곳입니다. "
알고 보니 그의 팬이었던 그 식당 주인이 “사무실처럼 사용하시라”며 방을 하나 내준 거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와 별다른 친분이 없었던 나는 이후 그 식당에서 여러 번 그와 마주치면서 꽤 가까워졌다. 그러면서 솔직하고 털털하며 인간적이던 그에게 호감을 가지게 됐다.
그는 그 ‘식당 사무실’을 발판 삼아 열심히 지역구를 갈고 닦은 덕택에 내 사퇴 이후 열린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종로 국회의원이 됐다. 되짚어 보면 참으로 묘한 인연이다. 내 국회의원 자리를 물려받은 그가 대통령 자리를 나에게 물려줬으니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8년 2월 25일 17대 대통령 취임식을 마친 뒤 단상을 내려오며 대화하고 있다. 중앙포토
그로부터 13년 뒤인 2008년 초, 대통령 당선인이 된 나는 삼청동 안가에서 한 고위 공직자를 만났다.
" 당선인님, 새 정부가 출범하면 사직하겠습니다. "
당시 검찰의 최고 책임자, 임채진 검찰총장이었다. 내 첫 검찰총장인 그는 또한,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검찰총장이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17대 대선(12월 19일)을 한 달도 남겨놓지 않았던 2007년 11월 24일 그를 검찰총장으로 임명했다.
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10년 만에 보수 정부가 들어서자 임 총장은 최단명 총장이 될 위기에 처했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고 싶어 하는 건 모든 정권의 본능이다. 특히 검찰총장 같은 권력기관 총수는 자기 사람으로 앉히는 게 상례였다. 임 총장도 당연히 짐을 싸야 한다고 생각한 거다. 그는 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당선인님, 저는 현 정부에서 임명된 검찰총장입니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당선인께서 원하시는 분을 새 총장으로 임명하는 게 맞을 듯합니다. 저는 사직하겠습니다. "
나는 그를 바라보고는 차분히 말했다.
" 뜻은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사직은 수용할 수 없습니다. 나는 임 총장을 유임시킬 작정입니다. "
임 총장이 놀란 표정으로 반문했다.
" 정말이십니까. 왜 저를 유임시키려 하십니까. "
내가 그 이유를 설명하자 그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임채진 검찰총장이 2008년말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09년 업무보고에 앞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좌파 진영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와 그 직후 일어난 비극의 책임을 전적으로 나에게 지워왔다. 내가 검찰 수사를 배후에서 총지휘하면서 그를 압박하고 핍박해 결국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게 그들 주장의 요지다.
그러나 당시 노 전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고립시킨 것은 그들이었다. 수사가 시작되자 민주당을 비롯해 좌파 언론들은 노 전 대통령을 향해 날 선 비판과 야유를 쏟아냈다. 내가 아는 노 전 대통령은 검찰 수사나 상대 정파의 비난에는 절대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나, 자기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당한 것은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을 거다.
그러던 사람들이 노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자, 그 화살을 내게 돌린 것이다. 나는 오랜 세월 일체의 반박 없이 그 비난과 억측을 묵묵히 감내했다.
백원우 민주당 의원이 2009년 5월 29일 경복궁 흥례문 앞 광장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도중 이명박 대통령에게 "사과하라"고 소리치고 있다. 중앙포토
그렇게 17년이 흘렀다. 그사이 그 사안을 보는 시각은 분화했고 성숙해졌다. 물론 여전히 노 전 대통령을 성역화, 순교자화하면서 일체의 다른 해석을 허용치 않으려는 이들이 좌파 진영의 주류인 게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노무현의 죽음을 이용하는 세력”이라고 그들을 비판하면서 객관적 분석을 요구하는 이들이 좌파 진영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공세의 대상이던 보수 진영에서 이 사안에 대해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도 의미 있는 변화다.
나 역시 이제는 그때의 일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노 전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박해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를 둘러싼 국세청 세무조사와 검찰 수사는 결코 내 뜻이 아니었다. 나는 검찰이 과잉 수사를 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직간접적 제어를 시도했고, 노 전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으로서 최대한의 예우를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 주변에 있었던 이들은 진실을 알고 있을 거다. 내가 얼마나 그를 보호하려 했으며, 얼마나 예우를 갖추려 노력했는지 말이다.
그중 한 명이 당시 변호인이던 문재인 전 대통령일 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검찰 출석을 앞둔 2009년 4월 24일 변호인인 문재인 전 비서실장이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 사저에서 대책을 논의한 뒤 귀가하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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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이 17년간의 침묵을 깨고 2009년의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및 서거에 대해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 전 대통령은 또한, 노 전 대통령 서거 책임을 자신에게 지운 진보 진영을 작심한 듯 비판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URL 링크를 복사해 주소창에 붙여넣으세요.
“노무현 지키라고 했다”…MB, 17년 만에 침묵 깼다 ①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57364
MB “노무현 버린 건 좌파…문재인도 진실 알 거다” ②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58446
‘이명박 회고록’ 또 다른 이야기
“인정하자, 보수는 참패했다” 이명박, 13년만에 처음 입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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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이제 그만합시다”…서거 며칠 전 MB에 온 ‘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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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수감중인 MB에 한 부탁 “UAE 국왕에게 편지 써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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