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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은 됐어요, 회 한 접시 하죠”…비만약이 바꾼 추석 밥상

중앙일보

2026.09.24 14:00 2026.09.24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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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맞아 산적 꼬치를 부치는 모습. 뉴스1

추석을 맞아 산적 꼬치를 부치는 모습. 뉴스1

직장인 이모(43·서울)씨는 추석을 앞두고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처가와 본가에 가져갈 회를 주문했다. 2주 전부터 맞고 있는 ‘마운자로’(5㎎) 영향으로 전과 송편 같은 명절 음식은 많이 먹지 못할 것 같아서다. 이씨는 “예년에는 생선전과 육전을 좋아했지만 올해는 기름진 음식을 생각만 해도 느끼하다”며 “아예 안 먹으면 눈치가 보일 것 같아 단백질이 많고 더부룩함이 덜한 회를 준비해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비만 치료제 이용자가 빠르게 늘면서 명절 밥상 풍경까지 달라지고 있다.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계열 치료제가 식사량뿐 아니라 먹는 음식의 종류와 식료품 구매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도 잇따른다.
추석을 앞두고 서울 한 시장에서 떡집 직원들이 송편을 포장하고 있다. 뉴스1

추석을 앞두고 서울 한 시장에서 떡집 직원들이 송편을 포장하고 있다. 뉴스1

당·탄수화물 줄고 단백질 쇼핑 늘어
미국에선 비만치료제를 사용한 뒤 장바구니 지출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23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코넬대 연구진이 구성원 중 최소 한 명이 ‘위고비’ 등 GLP-1 계열 치료제를 사용한 2602가구를 분석한 결과, 투약 시작 6개월 안에 식료품 지출이 평균 5.3% 감소했다. 연소득 12만5000달러(약 1억7000만원) 이상의 고소득 가구에서는 감소 폭이 8.2%로 더 컸다.

품목별 감소율은 스낵이 10.1%, 베이커리 8.8%, 쿠키 6.5%였다. 패스트푸드점과 카페 등 외식 지출도 8%가량 줄었다. 다만 치료를 중단한 가구에서는 식료품 지출이 투약 전 수준에 가까워진 것으로 조사됐다.

구매한 식품의 영양성분도 달라졌다. 지난 1월 발표된 덴마크 코펜하겐대병원 연구에 따르면 GLP-1 계열 치료제 복용자가 구매한 식품의 100g당 열량은 복용 전 209.4㎉에서 복용 후 207.3㎉로 낮아졌다. 당(15.7g→15.1g), 탄수화물 (19.8g→19.3g), 포화지방(7.3g→7.2g)도 감소했다. 반면 단백질은 6.6g에서 6.9g으로 늘었다.

가공식품 구매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탄산음료나 과자·라면·소시지 같은 초가공식품 비중은 39.2%에서 38%로 낮아졌고, 비가공식품은 46.9%에서 47.8%로 높아졌다. 이 연구는 2019~2022년 GLP-1 계열 치료제를 복용하기 시작한 293명의 첫 처방 전후 1년간 수퍼마켓 구매 내역을 대상으로 했다.

오상우 동국대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다이어트에 대한 의지와 음식에서 느끼는 보상 작용이 둔화한 효과가 동시에 작용했을 수 있다”며 “예전에는 당겨서 먹던 음식도 먹다가 중간에 그만두거나, 먹어도 이전만큼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건너뛰기보다 용량 유지하는 게 좋아”
이런 변화는 확산할 전망이다. 노보와 일라이릴리가 먹는 비만약을 내놓은 데 이어, 최근 노보는 6~11세 비만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세마글루타이드(위고비 주성분) 임상 3상에 성공하는 등 시장이 커지고 있어서다. 시장조사기관 아이큐비아(IQVIA)에 따르면 국내 비만치료제 시장 역시 2024년 2426억원에서 지난해 8195억원으로 1년 만에 3배 이상 커졌다.

국산 비만치료제 출시도 임박했다. 한미약품이 자체 개발해 생산하는 GLP-1 계열 비만치료제 ‘에페’는 이르면 다음 달 시장에 나올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비만 환자 448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 3상에서 40주 투약 후 평균 체중 감소율은 9.75%였다. 환자의 49.5%는 체중을 10% 이상, 19.9%는 15% 이상 감량했으며 환자별로는 최대 30%의 체중 감소가 나타났다.

사용자들은 고민을 공유하기도 한다. 명절 연휴를 앞두고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약을 한 주 건너뛰고 그다음 주에 맞아도 될까’, ‘부모님은 마운자로 맞는 거 모르시는데 본가에 주사를 가져가야 하나’, ‘다른 복용자들 명절 식단이 궁금하다’ 등의 글이 올라왔다.
메스꺼움·변비 제품 한 곳에…부작용 약 전용 매대까지
비만 치료제는 먹거리 장바구니 뿐 아니라 약국 매대도 바꿔놓고 있다. ‘부작용을 위한 약’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일례로 미국 소비자헬스케어 기업 헤일리온은 위고비·젭바운드 같은 GLP-1 계열 치료제 이용자를 겨냥해 약국 체인 ‘CVS’의 일부 매장에 전용 진열대를 운영하고 있다.

비만 치료제 복용자들이 겪을 수 있는 메스꺼움·구토·변비·설사 같은 부작용을 완화하는 제품을 한 곳에 모아 두는 방식이다. 헤일리온은 진통제 ‘애드빌’과 소화제 ‘텀스(Tums)’ 등을 생산하는 기업으로, 이 같은 진열대 운영 후 올해 1분기 해당 제품의 매장당 매출이 평균 24% 늘었다고 밝혔다.



최은경([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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