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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한가위 소원 빌기

Los Angeles

2026.09.2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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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현 시인·극작가

장소현 시인·극작가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는 추석이다. 한가위 둥밝은 보름달을 올려다보며 소원도 빌고, 바다 건너 멀리에 있는 그리운 이들의 얼굴을 반갑게 만난다. 잘 먹고 잘살고 있겠지? 어디 아픈 데는 없으신지?
 
사전을 찾아보니, ‘한가위’는 크다는 뜻의 ‘한’과 가운데라는 뜻의 ‘가위’라는 말이 합쳐진 것으로, ‘가위’라는 말은 신라 유리왕 때 부녀자들이 즐겨한 길쌈놀이인 ‘가배(嘉俳)’에서 유래됐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나온다고 한다. 그러니까, 추석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큰 명절이다. 그 오랜 세월 사람들이 달님을 우러르며 저마다 소원을 빌었을 것이다.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에 묘사된 대로 달님은 천 개의 강을 비추고, 온 세상을 고루 밝히신다. 타향땅 미국에서나 고향 하늘에서나 같은 달님이시다. (참고로 ‘월인천강지곡’은 세종대왕이 죽은 아내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직접 한글로 지은 찬불가를 모아 편찬한 책이다. 모두 3권이나 현재는 상권 한 권만 존재하며, 국보 제320호로 지정되었다.)
 
그렇게 온 세상을 고루 비추는 달님 우러르며, 소원을 빌어본다.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달님, 온 누리 고루 밝히시는 달님.
 
두 손 모아 빕니다. 몹쓸 놈의 전쟁 당장 멈추고 평화가 가득하기를… 아무런 잘못 없이 죽고 다치는 사람, 특히 어린 생명의 희생이 더는 없기를…
 
달님, 천 개의 강을 빛으로 쓰다듬는 달님.
 
기후 변화라는 변괴로 지구가 온통 몸살을 앓으며 뒤척이고 있습니다. 빙하와 만년설이 녹아내리고, 살인적으로 찌는 더위, 홍수, 지진, 화산 폭발…. 지구가 몸살을 앓으면 가련한 인간들은 대책없이 겁에 질려 숨을 할딱거릴 뿐입니다. 이런 자연현상을 은은한 달빛으로 다스려주시기를…. 그리고 이런 변괴의 원인인 공해의 주범은 바로 인간임을 깨닫게 해주시기를….
 
달님, 누구에게나 공평하신 달님.
 
평화(平和)란 글자 그대로 쌀(禾)이 사람들 입(口)에 골고루(平)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지요. 그런 참 평화가 온 누리에 가득하도록 보살펴주세요. 너무 많이 가진 높은 놈들은 마구 버리고, 없는 이들은 굶주리는 일 없이, 골고루….
 
달님, 감히 값을 매길 수 없는 달님.
 
세상 구석구석에 배어 있는 지독한 돈독을 물리쳐주소서. 돈이 곧 하느님이시니, 돈으로 안 되는 일은 없다… 돈으로 사람의 가치를 매기는 야멸찬 세상… 순수해야 할 예술에까지 스며든 돈의 독을 그 맑은 힘으로 씻어주소서.
 
달님, 우주선이란 괴물에 깜짝깜짝 놀라시는 달님.
 
무섭게 발달하는 기계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고, 지켜주세요. 컴퓨터에, 휴대전화에, 이제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뇌를 갉아먹고 있습니다. 정겨운 손편지 한 장 안 쓰고, 생각이 아예 없어진 세상을 은근한 손길로 어루만져주시길….
 
달님, 뭇 중생을 긍휼히 여기시는 달님.
 
사람이 사람을 믿으며, 사람답게 더불어 사는 ‘사람세상’이 그립습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 아니라, 가장 잔인한 동물이라는 말이 맞습니다. 높으신 놈들부터 하찮은 시정잡배들에 이르기까지 온통 거짓말, 허세, 뜬소문으로 도배된 세상… 부디 부끄러움을 알도록 깨우쳐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삶을 꿈이라도 꾸게 살펴주소서.
 
달님, 타향땅이나 고향이나 같은 빛 뿌리시는 달님. 바다 건너 남의 땅 뒷골목 행랑채 곁방살이하는 디아스포라의 고달픈 삶에도 꿈의 무지개 찬란하기를…
 
꿈을 찾아온 사람들은 마구잡이로 쫓아내는 잔인한 짓일랑 이제 그만두고…
 
부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처럼 모두 함께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며 행복하기를….

장소현 /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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