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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와 열애설 난 비구니…“나 이대 나온 여자” 그 원조다

중앙일보

2026.09.25 14:00 2026.09.26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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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학당 이야기’ 모아보기
외국인이 설립한 학교에 보내면 나쁜 부모다? 여학생에게 체육을 가르친다고 학부모들이 “혼사길 막힌다”며 시위를?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이니 남교사와 여학생들 사이를 천으로 가린다? 지금은 실소를 부르는 말이지만, 140년전인 1886년 이화학당에선 엄연한 현실이었습니다. 여성의 학습권이 기본권 아닌 쟁취의 대상이었던 시절이었죠. 서울 정동길 선교사의 집에서 개교한 이화학당은 처음엔 입학생 모집도 어려워 ‘김 부인’ 학생 한 명으로 시작했습니다. 이화학당 1세대였던 (故) 서은숙 전 이화여대 이사장이 1970년 중앙일보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 시리즈에 연재한 이야기들입니다. “이거 실화?”라는 반응이 절로 나오는 이야기 보따리 중 몇 가지 핵심만 추려서 소개해드려요.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①이화학당 교장, 각서 쓴 이유

」

이화학당의 학생들. 중앙포토

이화학당의 학생들. 중앙포토

" “왕후의 통역관이 되리라.” "
이화학당의 첫 학생으로 회자되는 ‘김 부인’은 이런 포부를 품었다. 학구열은 뜨거웠지만 “여자가 공부를 하러 다닌다”는 소문은 두려웠다. 남의 눈을 피해 해가 진 뒤에야 공부를 하러 왔고, 메리 스크랜튼 교장은 성심성의껏 영어를 가르쳤지만 석 달을 못 채웠다. 김 부인이 그만두자 학생 수는 다시 ‘0’이 되었다.

이유가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이화학당을 서양인이 설립했다는 뜻에서 ‘양국관(洋國館)’이라고 불렀다. 지금이야 외국인 학교가 인기라지만 구한말 조선에선 기피 1순위였다.

“양국관에 아이를 보낸 나쁜 부모”라는 소문에 시달리는 엄마를 달래기 위해 스크랜튼 교장은 각서까지 썼다. 이렇듯 학생 한 명이 소중했던 이화학당. 140년이 지난 지금도 이화여대가 교명을 영어로 ‘Ewha Womans University’라고 고집하는 까닭이다. 여성 복수 명사인 ‘women’대신 단수 명사인 ‘woman’을 쓰고 복수형의 ‘s’를 붙인 배경은 뭘까.

(계속)
지하철 2호선 대놓고 박았다…이화여대 틀린 교명 ‘숨은 비화’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42750


「

②여학생이 체조? 망측하도다!

」

" “숨 쉬는 목석이 부녀자의 이상형이었던 시절, 가랑이를 벌리며 달음질 하는 체조를 가르쳤으니 반대 여론이 들끓었다.” "

이화학당이 1893년 체조와 체육 과목을 도입했을 당시의 이야기를 전한 말이다. 학생들은 재미있어 했지만 부모님들이 들이닥쳐 “우리 딸, 데려가겠다”고 항의했다. “이화학당 여학생은 며느리로 들이지 말자”는 말도 나왔다.

외국인 선교사 선생님들은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지네트 월터 선생님은 한술 더 떠서, 체조를 위한 의복까지 디자인했다. 치마끈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조끼처럼 변형한 것으로, 한반도 최초 여학생 체육복인 셈이다.

“부녀자가 가랑이를 벌리고!”… 서울시 공문까지 날아온 사연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53869
이화학당의 체조 시간. 맨 오른쪽 인물이 지네트 월터 선생님이다. 중앙포토

이화학당의 체조 시간. 맨 오른쪽 인물이 지네트 월터 선생님이다. 중앙포토



「

③이화학당 졸업생, 비구니 되다

」

" “정조는 움직이는 것이다.” "

이화학당 졸업생, 김원주(1896~1971)가 남긴 말이다. 그는 “결혼을 했어도 자유연애를 할 수 있다”는 요지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했다. 이른바 신(新)정조론이다. 어딜 가나 소문의 중심에 선 여걸이었던 김원주는 한국 1세대 여류 문인으로도 이름을 떨쳤다. 페미니스트의 선봉에 서서 잡지 ‘신(新)여자’를 창간하며 양성평등을 부르짖기도 했다. 그러다 돌연 불교에 귀의했고, 후대엔 ‘일엽 스님’으로 기억된다. 인생 자체가 드라마다. 소설가 춘원 이광수와의 사랑이 실패해 비구니가 됐다는 등의 소문도 무성했다. 진실은 뭘까.

“결혼했어도 연애는 자유” 이광수와 열애설 났던 그 비구니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57674
일엽스님(오른쪽)과 불교 귀의 전 김원주의 모습. 중앙포토

일엽스님(오른쪽)과 불교 귀의 전 김원주의 모습. 중앙포토



「

④‘사의 찬미’부터 5선 정치인까지

」

이화학당과 몇몇 여학교들이 곡절 끝 자리를 잡으면서 여성교육도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학교를 졸업한 여성 중 상당수가 유학을 꿈꿨다. 성악가를 꿈꾼 윤심덕 역시 유행가 ‘사의 찬미’에 가려져 있으나 치열한 학구열을 불태웠던 인물이다. 도쿄 우에노 음악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한 그는 그러나 현해탄을 건너던 중 사망했다. 유부남이었던 애인과 함께 바다에 몸을 던졌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지금까지도 이들의 로맨스는 연극이며 뮤지컬의 단골 소재다.

윤심덕(왼쪽)과 김우진. 중앙포토

윤심덕(왼쪽)과 김우진. 중앙포토


유학까지 마치고 온 여성은 정계로도 진출했다. 박순천씨가 대표적인데, 그는 해방 후 5선 고지에까지 올랐고 1965년엔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여야 영수회담에 나서기도 했다. 한국 정치사의 첫 여야 영수회담이었다.

유부남과 바다에 몸 던졌다…‘사의 찬미’에 가려진 그 여걸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59757
※이화학당 이야기’는 더중앙플러스에서 매주 금요일 연재합니다.

이화학당 이야기
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362



전수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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