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한 주택에서 홀로 생활하고 있는 무연고 고령자. 일본 장례업체 ‘후타보시(双星)’ 홈페이지 캡처
“이렇게 빨리 우리 곁을 떠나야 했습니까….”
지난 5월 말 일본 오사카시 니시나리구 내 아이린 지구(일용직 노동자 밀집 지역)인 ‘가마가사키(釜ヶ崎)’의 한 주민센터. 이날 한 무연고 고령자의 장례식이 열렸다. 영정 앞에 모인 조문객들은 눈물을 훔치며 흰 국화꽃을 든 채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일본 교도통신에 따르면 고인과 조문객들은 모두 가마가사키 미오쿠리노카이(釜ヶ崎見送りの会), 즉 ‘가마가사키 배웅회’의 회원들이다. 의지할 가족이나 친인척이 없는 무연고 고령자들이 외로운 죽음을 맞지 않고 세상과 존엄한 작별을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자원봉사 단체다. 은퇴한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인 스기모토 요시히로(82)가 2012년 2월 만들었으며, 불교 승려 나카하라 도요코(65)가 대표를 맡고 있다. 현재 자원봉사자를 포함해 100여명이 배웅회에 등록돼 있다.
일본 오사카시 니시나리구의 아이린 지구(일용직 노동자 밀집 지역)인 가마가사키의 고령자들. 사진 X(옛 트위터) 캡처
가마가사키는 일본 고도성장기인 195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초까지 일자리를 찾아 몰려든 일용직 노동자들이 밀집해 살던 지역이다. 이들이 시간이 흘러 고령층이 되면서 지역의 고령화도 빠르게 진행됐다. 니시나리구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36.1%로, 오사카시는 물론 일본 전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고령층 가운데는 가족과 단절된 채 홀로 지내는 이들도 적지 않아 무연고 고령자 문제는 오랫동안 니시나리구를 대표하는 사회문제로 지적돼 왔다.
하지만 이런 현실은 가마가사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본 총무성 통계국이 ‘경로의 날’인 9월 21일을 맞아 지난 20일 발표한 2026 최신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일본의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의 29.6%(약 3624만명)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한국 등 인구 4000만명 이상인 39개국과 비교해도 일본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가장 높았다. 이처럼 초고령사회인 일본에서는 무연고 고령자의 생전 돌봄부터 사후 장례까지를 누가 책임질 것인가라는 문제가 갈수록 중요한 사회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2024년 8월 가마가사키에서 열린 한 무연고 고령자의 장례식. 배웅회가 사후 유골 처리 등에 관여하며 장례식 준비를 도왔다. 사진 비영리단체(NPO) ‘코코룸’ 홈페이지 캡처
그런 만큼 일본 전역에는 무연고 고령자 돌봄 및 장례 프로그램이 널리 퍼져 있다. 의지할 가족·친인척이 없는 고령자가 생전에 자신의 장례와 사후 절차를 미리 정해두면, 지자체나 복지기관이 생전 안부 확인부터 사망 후 화장·납골까지 필요한 절차가 이뤄지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일본 전국고령자 등 종신지원사업자협회에 따르면 2026년 기준 400곳 이상의 관련 사업자들이 있다고 추산된다. 대표적으로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시의 ‘엔딩 플랜 서포트’나 후쿠오카현 후쿠쓰시 사회복지협의회의 ‘안심 야스라카(あんしん安らか·안심과 평안) 사업’이 있다.
가마가사키 배웅회가 이들 프로그램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지자체나 복지기관이 아니라 무연고 고령자들이 서로를 돌보고 사후 장례까지 책임진다는 것이다. 회원들은 평소 정기모임과 병문안 등을 통해 서로의 근황을 살피며 관계를 이어간다. 이와 별도로 자신의 비상연락처 등을 단체에 등록하고, 사망 후 장례와 관련 절차를 배웅회에 맡기는 계약도 맺는다.
회원이 병원이나 요양시설 등에서 사망하면, 이 계약에 따라 지자체의 연락을 받은 배웅회가 장례 준비에 나선다. 장례 비용은 공공복지 수급자가 사망했을 때 받을 수 있는 지원금으로 충당하고, 지역의 장례업체들이 제단과 꽃 등 장례용품을 무상으로 지원한다.
일본 오사카시 니시나리구의 아이린 지구인 가마가사키 배웅회(무연고 노인의 생전 돌봄과 사후 장례 절차를 지원하는 단체)와 협약을 맺은 장례 업체 '후타보시(双星)'의 장례 절차 안내문. 절차를 간단히 안내하면서 언제든 부담 없이 연락해 달라는 내용이다. 사진 후타보시 홈페이지 캡처
이런 배웅회 안에서 회원들은 서로를 의지하고 살아가고 있다. 한 남성 회원은 “평소 건강한 편이 아니라 매일 스스로 컨디션을 걱정하며 살았는데, 배웅회 덕분에 훨씬 심리적으로 안심되고 건강도 이전보다 좋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창립자 스기모토 요시히로는 일본 교토의 사찰 ‘지온인’과 인터뷰에서 “배웅회는 최후를 맞이할 때뿐만이 아니라, 살아가는 동안의 불안을 덜어주는 역할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배웅회가 오랫동안 단절됐던 가족을 다시 이어준 사례도 있다. 지온인에 따르면 2017년 8월 한 회원의 장례에는 배웅회 회원 등 약 50명이 참석했다. 이 자리엔 오랫동안 고인과 떨어져 지냈던 유족도 찾아와 눈물을 흘리며 마지막 길을 함께했고, 장례를 치러준 배웅회 회원들에게 감사의 뜻도 전했다.
나카하라 대표는 이 같은 배웅회의 역할이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혼자 죽는다는 것은 우리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앞으로도 사람들의 삶과 죽음에 함께하고 싶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