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소재 공과대학을 졸업한 취업준비생 손모(28)씨는 증권사 입사를 목표로 취업 준비가 한창이다. 손씨는 “주요 대기업 공채가 씨가 말랐고, 공대 졸업자조차 갈 곳이 마땅찮다”며 “지난해부터 금융권 입사를 목표로 금융관련 자격증 등 스펙을 쌓았는데, 올해는 증권가의 채용이 많아져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취업 한파 속에서 여의도 증권가에 모처럼 채용 훈풍이 불고 있다. 증시 활황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갈아치운 대형 증권사들이 잇따라 신입사원 공개 채용에 나서면서다. 성과 보상을 노린 젊은 구직자들의 발길도 증권업계로 향하는 모습이다.
2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신입사원 공채를 확정하거나 이미 공고를 낸 증권사는 한국투자·키움·삼성·LS·DB·교보증권 등 8곳을 넘어섰다. 특히 지난해 하반기 신입 채용을 건너뛰었던 NH투자·신한투자증권이 두 자릿수 규모로 채용을 재개했다. iM·신영·메리츠증권도 하반기 공채를 준비 중이며 KB증권 역시 진행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여의도 증권가. 연합뉴스
이 같은 채용 확대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증권업계의 호실적 덕분이다. 국내외 주식 거래 증가로 수수료 수익이 급증하면서 올 상반기 영업이익 순이익 최대 반기 실적을 기록한 곳이 많다. 한 대형 증권사 인사담당자는 “실적이 꺾였을 때는 즉시 전력감인 경력직을 주로 뽑았지만, 올해는 실적이 좋은 덕분에 기초부터 가르쳐 키울 신입을 채용할 여력이 확보됐다”고 설명했다.
채용문이 넓어지자 금융권 구직자 사이에서도 ‘은준생’(은행 취업 준비생) 대신 ‘증준생’(증권사 취업 준비생)의 비중이 늘고 있는 분위기다. 점포 통폐합과 창구 인력 감축으로 은행은 입행 문턱이 높아진 반면, 증권·운용사는 몸집을 불리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 임직원 수는 2022년 6월 말 3만8817명에서 올해 6월 말 4만315명으로 3.9% 늘었다. 자산운용사 임직원도 같은 기간 1만2096명에서 1만3769명으로 13.8% 증가했다. 반면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임직원은 같은 기간 5만5883명에서 5만3151명으로 4.9% 줄었다.
채용 플랫폼 인크루트가 올해 6~7월 대학생 181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금융기업 선호도를 보면 증권사 선호도는 34.4%로 은행(34.5%)과 0.1%포인트로 좁아졌다. 2년 전 조사에선 은행 40.0%, 증권사 26.0%로 은행의 선호도가 훨씬 높았다.
다만 채용 평가 방식은 과거와 달라졌다. 인공지능(AI) 열풍에 따라 증권사들이 디지털·AI 역량 검증을 대폭 강화하면서다. 신한투자증권은 올해 채용 과정에 AI 역량 검사를 신설했으며, 한국투자증권도 올해부터 채용 과정에 AI 면접을 처음 도입했다. AI 기반 지원자의 업무 수행력을 분석해 종합적으로 역량을 평가한다는 방침이다.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AI 활용이 늘어나면서 인재들을 뽑을 때 AI와 관련된 업무 적합성을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업계 일각에서는 몇몇 대형 증권사 공채로 증준생이 쏠리는 양극화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다올·유안타증권 등 중소형사들은 비대면 거래 확산과 점포 축소, 신입 육성 부담 등을 이유로 하반기 공채 계획을 접고 수시ㆍ경력 채용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한 중소형 증권사 관계자는 “신입을 뽑아 가르쳐 놓으면 대형사로 이직하는 사례가 잦다. 공개 채용을 진행하기가 현실적으로 조심스럽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