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테네시주 녹스빌에서 대통령 전용헬기 마린원에 탑승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이 호르무즈해협 재개방을 위해 제시한 ‘7일 계획’을 거절했다. 시행 중인 해상봉쇄와 경제제재가 이란 압박에 효과적이라 보고 이를 유지해 유리한 협상 국면을 마련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트럼프는 26일(현지시간) “나는 그들(이란)의 합의안을 거절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란이) 너무나 크게 패배하고 있어서 해협을 즉시 개방하는 합의를 맺고 싶어 한다”며 “그들은 현재 호르무즈해협에서 들어오던 자금이 끊겨 돈이 없어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다”며 “어젯밤 엄청난 양의 석유가 빠져나갔고, 선박 29척이 나왔다”고 말했다.
이란이 미국 측에 제안했다는 ‘7일 계획’은 미국이 이란에 대한 해상봉쇄와 일부 동결자산을 해제하고 이란산 원유 수출 제재도 완화하면, 이란은 7일 안에 호르무즈해협을 다시 열고 핵 프로그램에 관한 협상을 재개한다는 내용이다.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은 지난 24일 이 제안이 6월 미국과 이란이 합의했던 양해각서(MOU)에 포함된 조처를 다시 이행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미국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유엔 핵 사찰단의 입국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트루스소셜에 호르무즈해협을 트럼프해협(TRUMP STRAIT)으로 이름을 바꾼 중동 지도를 올렸다. 트루스소셜 캡처
하지만 트럼프는 미국이 이미 호르무즈해협을 통제하고 있는 만큼 합의를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이날 트루스소셜에 호르무즈해협을 ‘트럼프해협’으로 이름을 바꾼 지도를 올렸다. 트럼프는 지난 2일 “우리가 통제하고 있으니 호르무즈해협의 이름을 트럼프해협으로 바꿔야 할까”란 글을 올린 바 있다. 무력 사용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가 오는 11월 중간선거 이후 이란에 대한 폭격을 재개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가 가진 자신감의 배경엔 촘촘한 제재망이 있다. 조너선 버크 미 재무부 테러자금 담당 차관보가 이달 약 2주 동안 중동과 유럽을 순방하는 등 50여 개국과 접촉하며 이란과의 거래를 중단하라는 전방위 압박을 벌이고 있다고 WSJ은 전했다.
미국 측은 이란과 거래를 계속할 경우 미국과의 금융·경제 관계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이들 국가에 전달했다. 이에 많은 국가가 이란 항공사와 은행의 활동을 제한하고 있다. 오만과 아랍에미리트(UAE), 튀르키예는 이란 마한항공의 자국내 운항을 차단했다.
또 UAE는 이란 최대 상업은행인 멜리은행 현지 지점들의 이란 관련 거래를 차단했으며, 튀르키예는 또 다른 이란 은행인 멜라트은행 이스탄불 지점의 영업허가를 취소했다. 영국도 이란 은행에 대한 제재 예외조치를 갱신하지 않기로 함에 따라 멜리은행 런던 자회사의 영업이 어려워졌다.
미국의 해상 봉쇄와 항공 운항 제한, 금융 제재가 겹치면서 이란의 경제난은 심각한 수준이다. 이란 약사협회에 따르면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의 치료에 쓰이는 의약품 약 60종이 부족한 상태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원유 수출 급감 등으로 외화 수입이 줄면서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이란 경제가 5.4% 역성장하고 소비자물가가 68.9%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24일 이란 테헤란의 한 건물에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가 노획한 미국의 수상드론의 모습을 그린 반미 선전 그림이 걸려 있다. AFP=연합뉴스
어려움이 커진 이란은 트럼프의 거부 의사에도 유화 제스처를 거두지 않고 있다. 아라그치 장관은 “미국 대통령의 첫 번째 반응을 확인했지만 중재자들을 통해 확실한 (미국 측) 입장이 전해지길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30일까지 미국에 체류할 예정이다.
관건은 이란의 숨통을 틔워주는 중국이다. 데이비드 퍼듀 주중 미국 대사는 이날 트럼프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중국의 대이란 지원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 측은 미국의 대이란 제재를 따르지 않겠다는 방침을 전했다고 이란 정부 고위 관계자가 교도통신에 밝혔다.
한정 중국 국가부주석은 이날 유엔총회 연설에서 “중국은 걸프 지역을 포함한 중동 국가들의 주권과 안보가 존중돼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주요국은 국제 평화와 안보를 수호하는 데 특별한 책임을 지고 규칙을 준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란전쟁에서 미국이 벌인 군사행동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