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퇴근하고 있다. 이날 조 대법원장은 입장문을 통해 청와대의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요청에 대해 “응할 수 없다”고 밝혔다. 김경록 기자
조희대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임 재제청을 거부하며 내년 6월 대법원장 교체기까지 대법관이 공석으로 남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교착상태를 풀려면 대법원장과 대통령 중 어느 한쪽이 먼저 입장을 바꿔 행동에 나서야 하지만, 양측 모두 먼저 움직일 뚜렷한 계기나 명분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
대통령·대법원장, 입장 번복 명분 없어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1일 청와대에서 이흥구 전 대법관에게 서훈을 수여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은 조희대 대법원장. 청와대 제공
대법원장이 먼저 후보를 재제청하는 건 “청와대 공문을 다시 이해하라”는 취지의 청와대 요구를 받아들이는 셈이 된다. 대법원장이 “대통령실 공문에 재제청 요청 사유와 근거가 제시돼 있지 않다”는 결론을 스스로 번복하는 것이기도 하다.
청와대의 입장 변화를 기대하기도 힘들다. 마음을 바꿔 손봉기 후보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송부하는 건 “제청이 절차적 완결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입장을 180도로 뒤집는 것이다. 대법원장의 요구대로 재제청 요청 사유를 보다 구체적으로 기재한 공문을 다시 대법원에 보내는 방법도 있지만, 이미 “구체적 헌법적 근거와 사유를 찾을 수 없다”고 밝힌 대법원장이 이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
갈등 중심엔 헌법 104조 2항 해석론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원내대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서영교 위원장 등이 23일 조희대 대법원장 대법관 재제청 거부 관련 서울 서초구 대법원을 항의 방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갈등에는 대법관 재제청에 대한 양측의 엇갈린 헌법 해석이 깔려 있다. 헌법 104조 2항은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한다. 이 조항을 3개 권한(제청권·동의권·임명권)을 단순 나열한 것인지, 각 권한의 행사 순서까지 규정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헌법학자들도 해석이 엇갈린다.
대법원장 입장은 이 조항이 권한뿐만 아니라 그 행사 ‘순서’까지 규정했다는 해석을 따른 것이다. 이 해석론은 대통령에게는 국회의 동의를 얻은 후보를 임명하거나 임명하지 않을 권한이 있을 뿐, 임명동의안을 송부하지 않고 대법원장에게 재제청을 요구할 권리는 없다고 본다. 즉 “국회의 동의 절차를 거친 다음 대통령이 임명권을 행사하라는 게 헌법의 취지(지성우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라는 시각이다.
청와대 측 입장은 헌법 104조 2항이 독립적인 권한을 나열한 것일 뿐, 절차를 정한 건 아니라는 해석을 따른다. 대통령이 임명할 의사가 없는데도 국회에 임명동의안을 송부하는 것은 모순이므로, 재제청을 요구할 권리도 도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대환 서울시립대 로스쿨 교수는 “임명동의안 송부는 대통령의 임명권의 일환이라고 봐야 한다”며 “만일 국회로 회부할 수 없는 사유가 있다면 재제청을 요구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양측 중 어느 하나가 움직여 재제청까지 이어지더라도, 재제청 방식을 두고도 입장차를 해소해야 한다. 청와대는 기존 추천위에서 낸 후보 3명(김민기·박순영·윤성식 후보) 중 1명을 재제청하라고 우회적으로 요구했다. 반면 법원행정처는 이번 재제청 거부 전까지 2012년의 선례를 따라 추천위를 새로 꾸리고 천거부터 다시 받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해왔다.
━
권한쟁의 결론 전 대법원장 교체기 도래할 듯
조희대 대법원장(왼쪽 일곱 번째)과 대법관들이 지난 3월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모해위증 관련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착석해 있다. 뉴스1
키를 쥐고 있는 건 헌법재판소다. 국민의힘 의원 109명은 지난 21일 헌재에 이 대통령을 상대로 한 권한쟁의심판청구서를 제출했다. 청구서에는 이 대통령의 재제청 요구 및 임명동의안 미제출로 국회의원으로서의 심의·표결권이 침해됐다는 주장이 담겼다. ‘임명동의안 송부’가 대통령의 권한인지 의무인지가 쟁점인 만큼 사건이 각하되지 않으면 헌재는 헌법 104조 2항에 대한 해석을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권한쟁의심판 선고까지 소요되는 기간은 평균 595일(1년 8개월, 2024년 기준)이다. 헌재에서 심리하는 사이 대법원장 교체기가 도래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조 대법원장의 임기는 내년 6월 5일까지다.
결국 대법관 제청은 다음 대법원장의 첫 숙제가 될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통상 대법원장 교체를 앞두고는 신임 대법관을 제청하지 않았던 점을 고려하면, 후임 대법원장은 내년 5월 퇴임하는 천대엽 대법관의 후임까지 두 자리의 공백을 채워야 한다.
이 경우 지난 6개월간 비어있던 대법관 공백이 최소 1년 3개월까지 늘어나게 된다. 한 고법판사는 “결국 대법원과 청와대 양측 모두 교착 국면을 해소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라며 “후임 대법원장에게도 부담이 되고, 국민들에게는 재판 지연으로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