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이대로 가면 큰일이 날 것이라고 다카이치 총리에게 전했었다.”
이마이 다카야(今井尚哉) 일본 내각관방참여가 지난 25일 공개된 인터뷰에서 내놓았던 경고다. 한때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리의 측근이었던 그의 발언은 같은 날 열린 미·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주목받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양국이 ‘동맹국’이었다고 강조하면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정상회담 환영사에서 중국을 “제2차 세계대전 때 우리는 동맹이 됐다”고 칭하며 일본과 싸웠던 미국인 의용병 등을 언급했다. 시 주석도 같은 날 국빈만찬 연설에서 “80여년 전 양국 국민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우며 일본 군국주의 침략자들에 맞섰다”며 “피와 불로 단련된 이 우정은 반드시 대대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현재 동맹국인 일본은 중국을 향한 트럼프의 과도한 ‘립서비스’에 당혹해하는 분위기다.
중국은 지난해 11월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시사’ 발언 이후 일본의 방위력 강화 등을 문제 삼아 ‘신형 군국주의’라고 비판하는 선전전을 펼쳐 왔다. 이런 상황에서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중국의 경제적 협조를 얻으려는 트럼프가 시 주석의 ‘항일 역사전’에 이용당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마이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최측근이었다. 특히 중국·러시아와의 관계에서도 경제적 실리를 중시했다. 경제산업성 출신인 그의 외교 노선은 때로 외무성과 충돌했지만, 아베는 그의 조언에 귀를 기울였다.
이마이 다카야 일본 내각관방참여. 지지통신
아베의 후계자를 자임하는 다카이치도 지난해 10월 취임 초기에는 이마이를 중용했다. 그러나 대중 관계가 악화하면서 외교 노선을 놓고 이견을 드러냈고, 이후 양측의 거리는 멀어졌다고 한다.
이마이가 ‘작심 발언’을 한 것은 지난주였다. 『주간신초』는 지난 22일(현지 시간) 미·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진행된 그의 인터뷰를 25일 온라인에 공개했다. 이마이는 “아베 정권의 중추에서 일한 경험이 있으므로 당시 상황을 다카이치 총리에게 전하고 있다”면서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관련 발언에 대해 “외교에서는 하면 안 되는 말이 있다”며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현직 내각관방참여가 총리의 외교를 공개 비판한 것은 이례적이다.
그는 “현재 일본에 가장 중요한 동맹국은 미국이지만, 모든 것을 미국에 의지하면 안 된다”라며 “일본의 국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 참여로서 다카이치 정권에 조언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한 가지”라고 말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여러 정책을 자신의 생각대로 밀어붙이는 스타일로 유명하다. 거기에 다카이치 총리 주변엔 이마이 외에 별다른 외교적 측근이 없어 총리의 외교 노선에 대해 ‘쓴소리’를 해 줄 사람이 거의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왼쪽)가 지난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유엔 총회를 계기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회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다카이치 총리는 미·중 정상회담 이틀 뒤인 26일 밤, 트럼프 대통령과 약 20분간 전화 회담을 갖고 시 주석과의 회담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그는 기자들에게 “중국을 둘러싼 여러 현안을 중심으로 의견을 교환했고, 일·미 간 협력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전화 통화를 포함해) 일주일 내에 두 차례나 정상회담을 가진 것은 그야말로 일·미 동맹의 끈끈한 유대를 보여주는 것이다. 저는 일본과 미국은 서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동맹국이 됐다고 말했고, 함께 세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해 나가기로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와타나베 쓰네오(渡部恒雄) 사사카와 평화재단 수석 펠로우는 “단기적인 이익만을 추구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일본의 경제력 저하로 인해 국제적 영향력이 낮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 정부는 대미 외교에 있어서는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전략적 비전이 부족한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에 관한 국회 답변이 초래한 일·중 관계 악화가 (미·중 회담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는 오는 11월 중국 광둥성 선전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 성사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시 주석은 미국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고 있어, 지금 일본에 양보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양국 정상회담 성사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확산되는 이유다.
와타나베는 “중국은 국내 경제가 어려운 상황이라, 일본과도 관계를 개선하고 싶을 것”이라면서 “미국 중간선거는 여당인 공화당이 패배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중국은 ‘트럼프 이후’에 대비하기 시작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 “다카이치 정권도 현재 참의원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어 장기 집권은 어려울 수 있다”며 중국과 인맥이 있고 내년 자민당 총재 선거 출마를 노리는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전 총무상 등의 움직임에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