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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상의 시시각각] 위헌·내란이라며 헌재엔 왜 안 가나

중앙일보

2026.09.27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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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대통령의 임명권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으로, 대한민국 헌법에 위배되는 인식이다.”(청와대 관계자)

“본질적으로 내란적 성격이 있다. 희대의 내란 잔불이다.”(김민석 민주당 대표)

조희대 대법원장이 청와대의 대법관 재제청 요구를 거부하자 나온 여권의 반응이다. 말은 격앙됐는데 행동은 딴판이다. 청와대는 권한쟁의심판을 검토하지 않는다고 하고, 민주당 지도부는 탄핵에 신중하다. 이율배반이다. 대법원장 탄핵소추는 재적의원 3분의 1 발의,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된다. 여당이 마음만 먹으면 탄핵소추는 일도 아니다.

재제청 거부에 청와대·여당 격앙
막상 권한쟁의·탄핵에는 소극적
여론과 법리 자신 없어 주저하나

왜 주저하는가. 여론 부담이 있을 것이다. 뉴데일리·리서치웰 조사에서는 ‘재제청 요구가 사법부 독립을 해친다’는 응답이 52.6%였고, 개혁신당 개혁연구원 조사에서는 ‘(재제청 요구가) 잘못한 대응’이라는 반응이 55.3%였다. 조사 한두 개로 일반화하긴 힘들지만, 부정적 여론이 적지 않다는 뜻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결과를 자신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조 대법원장의 거부 이유는 간단하다. 청와대 공문에 재제청의 구체적 사유와 헌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이미 브리핑을 통해 ‘실질적 협의 없이 제청해 절차적 완결성이 부족했다’고 설명했다”고 반박한다. 하지만 법 어디에도 제청 전에 대통령과 협의하라는 규정은 없다. 사전 협의는 충돌을 피하기 위한 관행이다. 관행이 깨진 데 대한 아쉬움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관행대로 하지 않았다고 제청에 법적 흠결이 생기고, 대통령의 거부권이 인정되며, 대법원장이 재제청 의무까지 진다는 건 따져봐야 한다.

청와대 논리에는 선출 권력이 임명 권력보다 앞선다는 인식이 깔렸다. 대통령은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표이고, 대법원장은 대통령이 국회 동의를 얻어 임명하는 자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선출됐다는 사실이 다른 헌법기관의 권한보다 우위에 설 근거는 아니다. 역사적 상황은 전혀 다르지만, 나치도 선거에서 제1당이 된 뒤 의회의 입법권을 사실상 히틀러 내각에 넘긴 ‘수권법(授權法)’을 통해 독재의 길로 들어섰다. 선거로 얻은 정당성이 권력의 무제한으로 이어지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교훈이다.

애초 손봉기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보냈다면 간단했다. 부결됐다면 다시 절차를 밟으면 됐다. 청와대가 재제청을 요구하면서 전례 없는 상황이 생겼다. 대법관 임명을 둘러싸고 관행으로 미봉됐던 대통령·대법원장·국회 권한의 범위와 한계를 이제 법으로 정리할 수밖에 없게 됐다. 위헌이라면 권한쟁의를, 내란적이라면 탄핵을 추진해 헌재에서 법리로 다투면 된다. 그것이 대법원장의 출근 시간과 업무추진비를 뒤지거나 “인간의 도리가 아니다”며 공격하는 것보단 당당하다.

헌재가 비슷한 충돌을 정리한 전례도 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국회가 선출한 마은혁 헌법재판관 임명을 보류하자 국회는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최 대행의 부작위가 국회의 헌재 구성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이 문제를 정치가 아니라 법으로 해결하고자 한다면 헌재로 안 갈 이유가 없다.

최악은 조 대법원장이 퇴임할 때까지 끄는 것이다. 후임 대법원장이 대통령과 다시 ‘사전 협의’를 시작하면 전임자가 거부한 청와대 요구를 받아들였다는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새 대법원장이 취임하자마자 사법부 독립 시비에 휘말리게 된다. 더구나 대법관 증원으로 이재명 대통령은 임기 중 20명이 넘는 대법관을 임명한다. 제청권과 임명권의 경계가 지금처럼 흐릿하면 충돌은 반복되고, 그때마다 사법부 독립은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하나 더. 혹시 이 문제가 헌재로 가게 된다면 청와대가 선호한다는 김민기 판사의 배우자인 오영준 헌법재판관은 스스로 회피하는 게 마땅하다. 법정 제척 사유인지 따지기 전에 공정성 시비부터 없애는 것이 옳다.





이현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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