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다룬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란이 27일 정치권으로 번졌다. 재일 교포 문세광이 쏜 총에 맞아 육 여사가 사망했다는 정부 공식 발표와는 다른 결론을 암시하는 영화 내용을 두고 “영화적 상상력을 벗어난 정치적 프로파간다(선전)”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27일 페이스북에 “‘암살자(들)’은 육영수 여사를 암살한 사건의 배후가 북한이 아니라 박정희 전 대통령인 것처럼 왜곡했다”며 “영화적 상상력이 아니라 유족의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 패륜적 범죄”라고 썼다. 그러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 죽음을 권양숙 여사가 사주했다는 영화가 나오면 그것도 표현의 자유인가”라고 반문했다. 탈북민 출신인 같은 당 박충권 의원도 통화에서 “이 영화는 ‘육영수 여사 시해 사건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중정(중앙정보부)을 시켜서 한 것’이라는 북한 영화의 한국판”이라고 날을 세웠고, TK(대구경북) 4선 김상훈 의원은 “역사 인식을 비트는 극편향적 망동”이라고 말했다.
‘암살자(들)’은 1974년 8월 15일 서울 중구 장충동 국립중앙극장에서 일어난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 이 사건에 대해 당시 특별수사본부는 북한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의 지령을 받은 문세광이 광복절 연설 중이던 박정희 전 대통령을 저격했지만 미수에 그쳤고, 대신 박 전 대통령 옆에 앉아 있던 육영수 여사가 총탄에 맞아 숨졌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해 12월 20일 서울구치소에서 문세광은 사형이 집행됐다.
그간 육 여사가 문세광이 아닌 경호원 총탄에 맞았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주장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2005년 1월 육 여사가 사망한 ‘8·15 박정희 전 대통령 저격 사건’에 관한 외교문서가 31년 만에 공개되고, 다음 달에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이 사건을 집중 조명하면서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 ‘암살자(들)’에선 범행의 진실을 파고드는 기자와 형사를 중정이 방해하는 장면을 통해 이러한 의혹을 다뤘다.
영화 '암살자(들)' 스틸컷. [사진 하이브미디어코프]
야권은 영화가 그간의 의혹 제기를 넘어 ‘박정희 배후설’을 암시하는 음모론에 기반을 뒀다고 보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영화가 열린 결말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결국 “정치적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자작극”이라는 식의 음모론까지 파고들 공간까지 열어줬다는 불쾌감을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와 ‘덕혜옹주’ 등으로 유명한 허진호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지난 23일 개봉 직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먼저 논란에 휩싸였다. “픽션에서도 선을 세게 넘으면 안 된다”, “좌파는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서라면 가족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등의 반응이 쏟아졌다. 추석 연휴 닷새간 누적 관객 수 130만명을 돌파하는 등 나름 흥행에 성공하고 있지만 27일 현재 ‘암살자(들)’의 네티즌 평점은 2.6으로 실관람객 평점(8.6)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실제 영화를 본 사람보다 온라인 여론의 평가가 훨씬 부정적이란 뜻이다.
이런 부정적 여론엔 영화계 인사의 발언도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박찬욱 감독은 지난 26일 CGV왕십리점에서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서 “내란(12·3 비상계엄)을 진압하지 못했다면 얼마든지 똑같이 겪을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70년대 사건이지만) 젊은이 여러분에게도 얼마든지 볼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씨가 지난 25일 유튜브 ‘이동진의 파이아키아’에서 영화 속 총성 횟수와 수사 당국의 공식 발표 총탄 수의 차이를 언급하며 “그렇다면 나머지는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고 발언한 건 사실과 픽션의 경계를 흐린다는 비판을 샀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차라리 ‘영화는 영화로 봐달라’고 했다면 논란이 커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역사적 사실과 정치적 의도를 묘하게 섞으며 영화가 아닌 프로파간다처럼 보인다는 게 문제”라고 했다.
국민의힘은 영화계의 구조적 문제까지 거론하고 있다. 나경원 의원은 “영화 산업의 구조 자체가 좌파 세력에 장악돼 있고, 거기에 협조해야만 하는 자본들이 함께 하는 것 아니냐”며 “영화 시장에 좌파 세력의 무언의 압력이 가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암살자(들)’ 제작사가 ‘남산의 부장들’과 ‘서울의 봄’ 등으로 흥행 기록을 써온 하이브미디어코프인 걸 겨냥한 것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처럼 이념적 분열이 심한 사회에서 음모론에 기반한 콘텐트가 어떤 반응을 촉발할지 고려하는 것도 창작자들의 의무”라며 “영화적 상상력의 한계를 명확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더중앙플러스-김종필이 증언한 피격 사건 전말
“육영수 여사가 흉탄에 절명” 박정희 소리내 엉엉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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