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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비껴가다’와 ‘비켜 가다’

Los Angeles

2026.09.27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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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빛 노을이 거실 창문으로 비껴 들어왔다.” 이 문장에서 ‘비끼다’는 ‘비스듬히 비치다’란 뜻이다. “커다란 바위가 길목에 비껴 있었다”에서는 ‘비스듬하게 놓이다’란 의미로 쓰였다. 이렇게 쓰인 ‘비끼다’가 서술어일 때 주어는 어떤 의지나 의도가 없는 무생물, 즉 ‘노을’이나 ‘바위’ 같은 말들이 온다. ‘비껴가다’에서도 그렇다. 이 부분에서 ‘비키다’와 대비된다. ‘비키다’의 주체는 사람이나 동물이 된다.
 
‘비껴가다’는 ‘비끼다’와 ‘가다’가 결합한 합성어다. 다음처럼 ‘비스듬히 스쳐 지나다’란 뜻으로 쓰인다. “공이 골대를 살짝 비껴갔다.” “마지막 햇살이 비껴가고 있었다.” 앞서 언급했듯 ‘비껴가다’도 ‘공’ ‘햇살’ 등 무생물이 주어로 와야 자연스럽다.  
 
‘비키다’는 ‘방해되지 않게 자리를 조금 옮기다’ ‘다른 사람을 위해 다른 곳으로 옮기다’ ‘무엇을 피해 방향을 조금 바꾸다’ 등의 의미로 쓰인다. ‘비껴가다’와 달리 의지나 의도가 있는 사람이나 동물이 주어로 온다. 그리고 ‘비껴가다’는 한 단어지만, ‘비켜 가다’는 두 단어여서 띄어 쓴다. “우리는 골목에서 옆으로 비켜 가며 길을 양보했다.” “청년이 어르신께 자리를 비켜 드렸다.”  
 
그렇다면 “비극이 우리를 비껴갔다/비켜 갔다”에서는 무엇이 적절할까? 무엇을 써도 문제가 없다. 비극이 비스듬히 스쳐 지나간 것으로 볼 수도, 의인화한 비극이 방향을 조금 바꾼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어떤 의도로 쓸지에 따라 선택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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