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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살던 아파트서 쫓겨난 할머니…‘월세 폭등’ 분노 번진 이 나라

중앙일보

2026.09.28 00:00 2026.09.28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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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시위자들이 “주택은 권리” “감당 가능한 주택” 등의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임대료 급등으로 인한 주거난에 항의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6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시위자들이 “주택은 권리” “감당 가능한 주택” 등의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임대료 급등으로 인한 주거난에 항의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70년간 살던 집에서 쫓겨난 87세 여성이 스페인 사람들을 거리로 모았다. 강제로 문을 연 경찰에 끌려 나오는 여성의 모습에 많은 시민이 분노했고, 급등한 월세 해결을 요구하는 시위가 수도 마드리드를 비롯해 바르셀로나·발렌시아 등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다.

AP통신과 가디언 등에 따르면 26일(현지시간) 마드리드에선 정부 추산 2만5000명, 주최 측 추산 30만 명이 모였다. 시민들은 집 열쇠를 흔들고 “주택은 권리” “감당 가능한 주택” 등의 구호를 외치며 주택 가격 억제와 세입자 보호를 촉구했다. 27일엔 가족 단위 시위대의 합류로 규모가 더 커졌다. 상당수는 푸에르타 델 솔 광장에 텐트를 치고 밤을 지새우고 있다.
27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 푸에르타 델 솔 광장에서 87세 여성 마리카르멘 아바스칼의 강제 퇴거에 항의하는 시위대들이 텐트를 친 채 밤샘 농성을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27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 푸에르타 델 솔 광장에서 87세 여성 마리카르멘 아바스칼의 강제 퇴거에 항의하는 시위대들이 텐트를 친 채 밤샘 농성을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시위의 중심엔 마리카르멘 아바스칼(87)이 있다. 아바스칼은 지난 23일 마드리드의 한 아파트에서 30분 만에 법원 명령에 따라 퇴거당했다. 경찰이 휠체어를 탄 아바스칼을 끌어낸 것. 아바스칼이 들것에 실려 건물 밖으로 나가는 모습 등이 영상으로 공개되며 논란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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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간 살던 집에서 왜 쫓겨났나

지난 23일 70년간 살던 스페인 마드리드 아파트에서 강제로 퇴거되기 직전 마리카르멘 아바스칼의 모습. AP=연합뉴스

지난 23일 70년간 살던 스페인 마드리드 아파트에서 강제로 퇴거되기 직전 마리카르멘 아바스칼의 모습. AP=연합뉴스

아바스칼은 아버지가 임대차 계약을 체결한 아파트에서 1956년부터 지금까지 살았다. 부모가 숨진 이후 계약이 양도돼 세입자 신분을 유지했고, 월세가 크게 오르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문제는 지난 2018년 개인 소유였던 아파트를 투자회사인 우르바게스티온이 사들이면서 생겼다. 회사는 월세를 500유로(약 77만원)에서 2650유로(약 410만원)로 인상했다. 이후 조정 끝에 1650유로(약 255만원)로 줄었지만 아바스칼의 연금(월 1300유로)으론 감당할 수 없는 액수였다.

원하는 임대료를 받지 못하자 회사는 2020년 “아바스칼이 부모로부터 양도받은 계약은 무효”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선 아바스칼이 승소했지만 2023년 대법원이 회사 측의 손을 들어 주면서 판결이 뒤집혔다.

마리카르멘 아바스칼(87)이 지난 23일 70년간 살았던 스페인 마드리드 아파트에서 들것에 실려 강제 퇴거당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마리카르멘 아바스칼(87)이 지난 23일 70년간 살았던 스페인 마드리드 아파트에서 들것에 실려 강제 퇴거당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후 아바스칼의 퇴거 문제는 스페인 내 사회문제로 부상했다. 유엔 경제·사회·문화권위원회는 지난 6월 스페인 정부에 아바스칼이 안정적인 주택에 거주할 수 있도록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아바스칼의 월세를 대신 내주겠다는 익명 기부자의 제안도 있었지만 회사 측이 거부했고, 아바스칼은 결국 집에서 나와야 했다.

아바스칼은 퇴거 후 치료를 받던 병원에서 “저는 집을 지키지 못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집을 지킬 수 있도록 싸워달라”는 영상 메시지를 남겼다. 시위대는 “우리가 모두 마리카르멘이다” “마리카르멘 같은 사람은 더 없어야 한다”는 팻말을 흔들었다. 퇴거 당일 1만명이던 규모는 주말을 지나며 2배 이상으로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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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 10년간 2배로 폭등

지난 26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시위대들이 “퇴거 중단” 이란 문구의 팻말을 든 채 87세 여성 마리카르멘 아바스칼의 강제 퇴거에 항의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6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시위대들이 “퇴거 중단” 이란 문구의 팻말을 든 채 87세 여성 마리카르멘 아바스칼의 강제 퇴거에 항의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부동산 사이트 아이디얼리스타에 따르면 스페인의 평균 임대료는 10년간 두 배로 급등했다. 관광과 이민으로 주택 수요가 늘었지만, 공급은 제자리였기 때문이다. 스페인 중앙은행은 주택 약 75만5000채가 부족한 상태이며, 2028년엔 100만 채에 이를 수 있다고 전망한다.

안 그래도 모자란 주택을 대형 부동산 회사가 사들이며 공공 임대주택마저 메말랐다. 스페인의 공공 임대주택 비중은 2% 미만으로 유럽연합(EU) 평균(8%)에 크게 못 미친다. 시위에 참여한 교사 시몬 데 라 리바(43)는 AP에 “이번 사건은 분노의 계기일 뿐 우리는 오랫동안 (임대료) 문제로 힘들었다”고 말했다.

스페인에서는 지난 2011년에도 부동산 버블 붕괴로 인한 주택 압류에 저항하는 ‘인디그나도스(분노한 사람들)’ 시위가 있었다. 상황은 더 악화했다. 스페인 정치학자 에스테파니아 몰리나는 “15년 전엔 아파트를 소유할 수 없어 벌인 시위지만 이번엔 임대조차 어려워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가 지난 3일 의회에서 세우타 지역 대규모 이주민 유입 사태와 관련해 대응책을 설명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가 지난 3일 의회에서 세우타 지역 대규모 이주민 유입 사태와 관련해 대응책을 설명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이번 사건을 “사회적 비극”이라고 규정하며 대책 법안을 29일 의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임대료를 부분적으로 동결하고 세입자의 퇴거를 어렵게 하는 내용이 담길 전망이다. 하지만 집권 사회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해 통과는 불투명하다. 통과해도 규제를 의식한 임대업자들이 주택을 시장에 내놓지 않아 상황이 악화할 거란 우려도 나온다.



이승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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