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송호근의 세사필담] 묻고 싶다, ‘니들이 대학을 알아?’

중앙일보

2026.09.28 08:20 2026.09.28 13:25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 한림대 도헌학술원 원장·석좌교수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 한림대 도헌학술원 원장·석좌교수

달은 끝내 비구름을 벗어나지 못했다. 달빛이 그리웠다. 여름을 견디고 결실을 앞둔 우리의 지친 몸에 내려앉는 추석 달빛은 위로다. 세파를 헤치는 초민(草民)들을 가엾게 여기는 조상의 은은한 손길이다. 백성을 국가의 근본으로 삼았던 민유방본(民惟邦本)의 나라에서 달빛은 조상을 넘어 군주의 애민(愛民)에 닿는다. 세종은 백성을 ‘어여삐’ 여긴다고 했다. 동학 창의대장 전봉준도 한양 진격을 앞두고 군주의 덕화를 빌었다. 그런 달빛을 맞고 싶었다.

추석 달빛은 조상과 군주의 손길
말은 소통 통합 정책은 갈라치기
국립대 등록금 0원은 공정 파괴
‘비국민’ 사립대에 시한부생명 선고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치는 국민이 하는 것’이라는 그 불멸의 진리가 왜 가슴에 와 닿지 않았을까. 진정 국민을 ‘어여삐’ 여겼다면 세입자와 청년세대의 눈물을 쏙 빼진 않았을 것이다. 역대 정권 중 주택가격 상승률은 최고를 찍었다. 김승원 후보자를 왜 골랐는가?라는 기자 질문에 ‘고민 중’이라고 했다. 국회 법사위원장이 김승원을 포대기에 싸안고 눈물 흘린 청문회 장면이 방영된 뒤였다. 결국 자진 사퇴로 마감했지만 공소 취소를 결행할 친위대를 골랐다고 했다면 대법관 제청을 둘러싼 의구심도 잦아들었을 것이다. 배려, 소통에 더 정진하겠다는 자탄은 갈라치기와 무책임 정치를 가리려는 언술이었을까.

갈라치기 정치는 교육에도 옮아붙었다. 국립대와 사립대, 내년부터 국립대 입학생 등록금 ‘0’원이란다. 비수도권 30개 국공립대를 한정해 2030년까지 약 4000억원을 배정했다. 포대기에 안긴 국립대는 ‘국민’, 내쳐진 사립대는 ‘비국민’이 됐다. 이런 어이없는 정책을 누가 왜 만들었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 발표하면 끝이다. 최교진 장관은 빛나는 명분과 철학을 갖고 있을까. 한국 교육의 기둥과 뿌리를 말려 죽이는 제초제가 살포됐다. 세계 유일의 ‘지식 국가’ 조선과 글로벌 ‘교육 한국’을 구축한 주춧돌은 사학(私學)이다.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재차 확인한 민생, 개혁, 통합에 사학 죽이기가 들어 있었나.

조선의 인민, 한국의 국민에게 지식, 교양, 전문기술을 전수한 주류 기관은 사학이었다. 조선시대 관학은 성균관, 서울 4학, 지방 관청소재지 향교가 전부였는데, 평민과 양반 유지들이 사재를 들여 운영한 서당과 서원은 수천 개를 헤아렸다. 서원은 서당을 나온 청년들에게 성리학을 전수했다. 과거(科擧)를 준비하는 학당, 말하자면 사비를 들여 나라를 운영할 인재를 양성했다. 19세기 중반, 서원은 약 1700여 개, 서당은 10만 개를 헤아릴 정도였다. 사학의 나라였다. 1880년대 개화에 나선 고종이 영어, 군사, 농잠학교 등 관학을 열기는 했어도 교육계몽을 향한 지사들의 열기와 집념을 능가하지 못했다.

개화기 개신교 목사들이 배재학당(1885)과 이화학당(1886), 보성전문(1905), 연희전문(1915)을 설립해 근대교육의 최전선을 맡았다. 국립대 효시인 경성제국대학은 1926년에야 조선총독부가 개교했지만 조선인은 1/3로 제한됐다. 선각자들은 일본침략에 대항해 각종 학회와 단체를 조직하고 사학 설립에 힘썼다. 서북학회는 서울에 물장사 야학을 운영할 정도였다. 1905년경 사립학교는 약 6000개, 야학 1000곳을 합하면 총 7000개를 헤아렸다. 북간도 조선인들은 용정에 서전서숙을 세웠고, 이회영, 이상룡 일가가 압록강 삼원포에 군사학교인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해 3000명에 달하는 독립투사를 길렀다. 일제의 사립학교령으로 고난을 겪었지만 사학의 중심성은 해방 후에도 지속됐다.

현재는? 4년제 대학 195개 중 156개가 사립이다. 사립대는 한국의 대학 진학률을 세계 최고인 75%까지 끌어올린 일등 공신이었다. 2026년 QS 국내대학평가 순위에서 10위권 내에 사학은 7개, 국립은 3개에 불과했다. 2025년 중앙일보 종합대학평가에서도 30위 권 내에 국립은 단 6개교가 이름을 올렸다. 국립대 수효가 작기는 하지만, 국가 예산을 집중 투여했다면 중하위권에서 치고 올라온 국립대가 있어야 했다. 국립대 ‘등록금 0원’은 한국인의 오랜 심성인 균형과 공정을 파괴한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있다. 교육과 연구, 집념과 헌신을 촉진할 거버넌스! ‘조직화된 무정부(organized anarchy)’의 전형인 대학엔 의사(疑似) 사회주의와 도덕적 해이가 풍성하다. 국립대는 주인이 없다. 편애적 세금 투여는 이런 풍조를 부추기는 마취제다. 20년 전 ‘서울대 폐교론’을 외쳤던 운동권 정치인들은 이제 ‘서울대 10개 만들기’로 의기양양하다. 이렇게 묻고 싶다. ‘니들이 대학을 알아?’

이런 갈라치기 정책은 ‘주인 있는 대학’인 사학엔 최후의 일격이다. 10년 등록금 동결로 적자의 바다를 떠돌던 사립대는 급기야 인구절벽에 부딪혔다. 2036년 수험생 수는 입학정원의 80%, 2040년에는 60%까지 떨어진다. 시한부 생명을 선고받은 ‘비국민’ 사립대는 추석 달빛이 서러웠을 것이다. 국민 명부에서 지워진 사립대 학생 200만 명은 추석을 어찌 보냈을까.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 한림대 도헌학술원 원장·석좌교수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