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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전문가 칼럼] 정성일

Chicago

2026.09.28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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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유명해져서 이름을 빼앗긴 상표들
정성일

정성일

백화점에서 무심코 에스컬레이터에 오를 때, 이 단어가 한때 누군가의 독점 상표였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사람은 드물다.  
 
1900년, 찰스 시버거(Charles Seeberger)는 앞서 조지 휠러가 특허 받은 ‘움직이는 계단’의 권리를 사들여 오티스 엘리베이터(Otis Elevator)와 함께 상용화하면서, 여기에 ‘에스컬레이터’(Escalator)라는 이름을 붙여 상표로 등록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오티스는 이 제품을 ‘오티스의 에스컬레이터’라고 구분해 홍보하기보다, 자사 광고와 문서에서 이 단어를 제품 자체를 뜻하는 일반 명사처럼 써버렸다. 
 
‘오티스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라는 표현이 반세기 동안 반복되자, 대중은 물론 건축가와 도시계획가들까지 이 단어를 브랜드가 아닌 ‘설비의 종류’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결국 1950년, 경쟁사가 제기한 상표 취소 심판에서 미국 특허청은 에스컬레이터가 이미 보통명사가 되었다고 판단해 등록을 취소했다. 제품을 널리 알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정작 그 이름이 자기 것임을 밝히는 데 소홀했던 대가였다.
 
이보다 앞서 비슷한 운명을 겪은 이름이 ‘아스피린’(Aspirin)이다. 독일 바이엘(Bayer)은 의사와 약사에게는 성분명인 아세틸살리실산과 상표명을 구분해 알렸지만, 일반 소비자에게는 오직 ‘아스피린’이라는 이름으로만 약을 팔았다. 소비자에게 그 단어는 브랜드가 아니라 약 그 자체의 이름이 되어버렸다. 1917년 특허가 만료된 뒤 경쟁사들이 같은 이름을 쓰자 소송이 벌어졌는데, 1921년 러니드 핸드(Learned Hand) 판사는 바로 그 점을 지적했다. 의사와 약사에게 아스피린은 여전히 바이엘의 제품을 뜻하지만, 일반 소비자에게는 그저 알약의 이름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 결과 미국에서는 누구나 제품에 아스피린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되었고, 바이엘은 제품명 대신 자사 로고를 앞세워야 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판단이 나라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에서 아스피린은 보통명사지만, 고향인 독일을 비롯해 캐나다, 멕시코 등 80개국이 넘는 나라에서는 여전히 바이엘의 등록상표다.  
 
이처럼 상표가 너무 유명해진 나머지 상품 그 자체를 뜻하는 보통명사가 되어버리는 현상을 ‘상표의 보통명칭화’(Genericide)라고 부른다. 상표가 시장 전체의 대명사가 되는 순간, 법은 더 이상 그 단어를 특정 기업만의 소유로 인정해 주지 않는다. 트램펄린(Trampoline), 보온병(Thermos), 지퍼(Zipper) 역시 같은 길을 걸으며 상표권을 잃었다.  
 
그래서 오늘날의 기업들은 브랜드를 지키는 데 사활을 건다. 제록스(Xerox)가 “제록스로 복사하세요” 대신 “제록스 복사기로 복사하세요”라는 문구를 쓰는 것이 대표적이다. 구글(Google) 역시 ‘검색하다’라는 동사로 쓰인다는 이유로 상표 취소 소송을 당했지만, 2017년 미국 연방항소법원에서 상표권을 지켜냈다.  
 
브랜드를 널리 알리는 것과 그 브랜드를 지켜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아무리 이름이 세상에 퍼져나간다 해도, 그 이름이 ’누가 만들었는가’를 명확히 가리키고 있을 때 비로소 상표로서의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  (공학박사•특허변호사)
 

정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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