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부검은 건강한 애도의 첫걸음인 동시에, 유사한 위험에 처한 다른 이들을 구하는 사회 시스템을 만드는 씨앗이 된다. 사진은 심리부검 상담 모습을 AI로 제작한 이미지. [사진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소중한 이를 갑작스럽게 떠나보낸 유가족에게 남겨진 가장 고통스러운 질문은 ‘왜?’이다.
‘심리부검(Psychological Autopsy)’은 고인의 사망에 영향을 끼쳤을 다양한 요인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고인의 삶을 통합하는 과정이다. 단순한 사후 조사를 넘어선다. 훈련된 심리부검 면담원이 유가족들과 2~3시간 이상 심층 면담을 진행한다. 면담에서는 고인의 평소 성격, 주요 스트레스 요인, 의학적·정신과적 치료력, 경제적·직업적 상황, 사망 직전 보였던 ‘언어적·행동적·정서적 경고신호’ 등이 종합적으로 다뤄진다. 유족이 제공하는 경우 고인의 메모나 유서, 의료 내역 등이 결합해 하나의 완성된 심리적 분석 보고서로 재구성된다.
심리부검의 가장 강력한 사회적 가치는 ‘자살의 재구성’을 통해 유사한 위험에 처한 다른 이들을 구하는 정책을 만드는 기초 자료가 된다는 점이다. 또한 면담 과정 자체가 유족에게는 억눌린 슬픔을 터뜨리고 고인을 객관적으로 추모하게 돕는 ‘건강한 애도의 첫걸음’ 역할을 수행한다. 더불어 면담 이후에도 유족들이 적절한 심리적, 사회경제적 지원을 받아 가족의 자살로 인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유족 지원 서비스를 연계·제공하고 있다.
최근 심리부검 분석 결과에 따르면, 자살 사망자의 90% 이상이 사망 전 주변에 경고신호를 보냈으나 이를 주변에서 명확히 인지한 비율은 20% 안팎에 불과했다. 고인이 던진 ‘마지막 신호’를 사회적 안테나가 포착하지 못한 것이다. 심리부검은 이러한 정책적 맹점을 정확히 짚어내 실효성 있는 맞춤형 자살예방 대책을 수립하는 데 필수적인 이정표를 제공한다.
특히 청소년 자살 문제에서 심리부검의 중요성은 더욱 부각된다. 청소년은 또래 관계의 갈등, 학업 스트레스, 사이버 렉카 및 SNS를 통한 온라인 사이버 폭력 등 독특한 위험 환경에 노출돼 있다. 따라서 청소년 대상 심리부검 확대를 통해 디지털 환경 변화에 맞춘 세밀한 학교·가정 연계 안전망을 재설계하고, 위기 청소년을 조기 발굴해 개입하는 맞춤형 예방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보건복지부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에서는 2026년 한림대학교 산학협력단과 함께 청소년 심리부검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며 2027년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정윤순 이사장은 “현재 성인 중심의 심리부검 시행을 넘어 내년부터 청소년 심리부검을 통하여 늘어나는 청소년 자살의 원인을 체계적으로 밝힘으로서 심리부검이 사회적 방역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