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 평양으로 향하는 비행기. 탑승객 중에는 온몸에 깁스를 한 채 휠체어에 탄 남성이 있었다. 중국에서 활동하던 30대 초반 북한 해커 배용주씨였다. 북한 당국이 송환 사실을 감추기 위해 환자로 위장시킨 것이었다. 배씨가 저항을 못하게 하려는 목적도 있다.
인권조사기록단체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에 따르면 배씨는 대남공작원을 양성하는 마동희군사대학을 졸업한 뒤 중국에 파견돼 해커로 활동했다. 암호화폐를 탈취하고 한국 정부기관과 중국 군사기관의 정보를 빼내던 그는 한국 망명을 시도하다 중국 당국에 체포됐다. 신병을 넘겨받은 북한은 그를 주중 북한대사관에서 약 1년간 감금ㆍ취조한 뒤 본국으로 송환했다. 해외에서 이탈하거나 망명을 시도한 자국민을 추적ㆍ체포해 본국으로 끌고 가는 중국의 ‘여우사냥’을 빼닮은 북한판 작전이 이뤄진 대표 사례다.
TJWG는 28일 전ㆍ현직 북한 관계자 10여 명의 면담과 북한 전문매체 보도 등을 토대로 중국 내 북한의 초국가적 인권탄압(TNR) 실태를 담은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총책은 주중 북한대사관에 파견된 ‘안전대표’다. 공식적으로는 영사 직함을 쓰지만 실제로는 한국의 국가정보원에 해당하는 북한 국무위원회 산하 국가정보국(옛 국가보위성)에서 파견된 고위 간부다. 해외에서 이탈하거나 연락이 끊긴 북한인을 추적ㆍ체포해 송환하는 작전을 지휘한다.
정보지도원이 북한인의 이탈을 포착하면 안전대표는 12~24시간 안에 평양에 보고한다. 지시가 내려오면 정보지도원들이 ‘체포조’로 전환돼 추적에 나선다. 자체 정보망으로 표적을 찾기 어려울 경우 마약ㆍ총기 소지 등의 혐의를 씌워 중국 경찰에 공조를 요청한다고 한다.
붙잡힌 북한인들은 주로 북한대사관에서 취조 당한다. TJWG는 베이징 차오양구 대사관 영사부 건물 지하가 비밀 구금시설로 사용되는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전직 북한 외교관의 “영사부 건물 지하가 감옥 역할을 한다”는 진술 등 복수의 증언을 토대로 한 추정이다.
안전대표의 취조 결과는 당사자뿐 아니라 북한에 남은 가족에 대한 연좌 처벌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신희석 TJWG 법률분석관은 “북한이 외국에 비밀감옥을 차린 뒤 취조하면서 연좌처벌까지 하는 것은 심각한 유형의 인권침해”라고 말했다.
북한의 중국 내 억압, 공조 시스템. 자료 TJWG
TJWG는 북한의 TNR을 북한 기관원이 독자 실행하는 경우, 중국이 북한 체포조 활동을 묵인하는 경우, 중국 당국이 추적ㆍ체포ㆍ조사ㆍ인계까지 적극 협력하는 경우로 분류했다. 이영환 TJWG 대표는 “북한의 TNR은 국제범죄인 데다 중국의 사법주권도 훼손하고 있다”며 국제사회의 대응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