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우회 ‘홍해 길’ 다시 뚫었다…사우디 하루 350만배럴 수출 재개
중앙일보
2026.09.28 18:31
예멘 후티 반군의 위협에 지난 12일 홍해 바브알만데브 해협에 정박한 상선. AFP=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가 드론 공격으로 가동이 중단됐던 동서 송유관 복구를 마치고 홍해를 통한 원유 수출을 재개했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우회할 수 있는 핵심 수송로가 다시 열리면서 급등한 국제 유가를 끌어내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8일(현지시간) 사우디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가 전날부터 홍해 연안 얀부항에서 동서 송유관을 통해 운송한 원유 선적을 재개했다고 보도했다.
현재 동서 송유관의 원유 처리량은 하루 약 350만배럴 수준이다.
사우디 동부 유전지대에서 홍해 얀부항까지 이어지는 이 송유관은 길이 약 1200㎞로, 하루 최대 700만배럴의 원유를 운송할 수 있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사우디는 원유 대부분을 해상으로 수출해왔기 때문에 동서 송유관이 최대 용량으로 장기간 가동된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해협을 거치지 않고 홍해로 직접 원유를 내보낼 수 있는 동서 송유관이 사우디의 핵심 수출 통로로 부상했다.
지난 10일 이라크 내 친이란 세력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드론 공격으로 가동이 멈추기 전에는 하루 약 400만배럴의 원유가 이 송유관을 통해 수출됐다.
전 세계 원유 공급량의 약 4%에 해당하는 규모로, 호르무즈 봉쇄가 국제 원유시장에 미치는 충격을 완화하는 역할을 해왔다.
WSJ은 동서 송유관의 재가동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제해 국제 유가를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이란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얀부항을 통한 원유 공급이 확대되면 호르무즈 봉쇄에 따른 공급 부족 우려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8일 사우디의 송유관 가동 재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제 유가는 상승 폭을 일부 반납했다.
사우디는 홍해 수출 재개와 동시에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운송도 확대하고 있다.
선박자동식별장치(AIS)를 끈 유조선이 호르무즈 해협을 빠져나온 뒤 상대적으로 안전한 해역에서 다른 선박으로 원유를 옮겨 싣는 방식이다.
해운 데이터업체 케플러에 따르면 사우디 라스타누라에서 선적되는 원유는 9월 초 하루 150만배럴 수준에서 최근 하루 650만배럴까지 급증했다.
시장에서는 사우디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운송량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동시에 얀부항을 통한 홍해 수출까지 정상화할 수 있을지가 핵심 변수로 꼽힌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하마드 후세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두 경로의 수출량이 동시에 유지된다면 사우디 전체 원유 수출이 드론 공격 이전 수준을 넘어설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경우 국제 원유시장에 공급되는 물량이 늘어나면서 급등한 국제 유가에 하방 압력이 커질 수 있다.
다만 홍해 항로의 불안은 여전히 변수다.
후세인은 “예멘 후티 반군이 에너지 인프라에 가하는 위협을 고려하면 얀부항에서 원유를 수출하는 것이 이전보다 어려워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 후티 반군은 이른바 ‘저항의 축’의 일원으로,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움직임과 맞물려 홍해 항로까지 위협하고 있다.
사우디 선박에 대한 후티의 공격 위협이 이어질 경우 홍해를 통한 원유 공급 확대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어, 국제 유가 안정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정재홍([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