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가 1500억 달러(약 204조원)의 자사주 매입을 추가로 승인했다. 승인 기준 미국 기업 역사상 최대 규모다. 인공지능(AI) 투자 지속 가능성을 둘러싼 의구심 속에서도 장기 성장과 현금 창출력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는 평가다.
엔비디아는 28일(현지시간) 이사회가 자사주 매입 한도를 1500억 달러 추가 승인했다고 밝혔다. 애플이 2024년 세운 종전 최대 기록(1100억 달러)을 넘어섰다. 기존 미집행분을 합치면 2028회계연도까지 매입 가능한 금액은 2350억 달러(약 320조원)다. 다만 매입 주식의 소각 여부는 밝히지 않았다.
시장은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이날 엔비디아 주가는 1.68% 올라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가 1.61% 하락한 것과 대비됐다. 다만 올해 상승률은 약 20%로, 2022년 말 챗GPT 출시 이후 1200% 넘게 급등했던 기세에는 못 미친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현금 창출력 덕분에 AI 전환을 위한 기술에 투자하면서 주주에게 자본도 환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제이컵 본 이마케터 애널리스트는 로이터에 “엔비디아는 자사 하드웨어와 서비스 수요가 오래 지속될 것이라는 자신감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대규모 자본 환원이 통상 성장이 둔화한 대기업에서 나타나는 것과 달리 엔비디아는 여전히 빠르게 성장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최근 회계연도 잉여현금흐름(FCF)은 약 1000억 달러(약 136조원)로, S&P글로벌의 비저블알파는 2028회계연도에 3290억 달러(약 447조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자사주 매입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한국거래소 기업공시채널(KIND)에 따르면 28일 기준 삼성전자는 예정 물량의 89.70%, SK하이닉스는 68.76%를 매입했다. 지금 속도가 이어지면 각각 10월 초와 중순께 자사주 매입이 마무리될 전망이다.
대규모 자사주 매입은 뚜렷한 매수 주체가 부재한 코스피에서 수급 공백을 메웠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20일부터 이달 28일까지 코스피에서 자사주 매입을 포함한 기타법인은 약 40조원을 순매수했다. 같은 기간 외국인과 개인은 각각 약 22조원, 18조원을 순매도했다. 강진혁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자사주 매입 등 기타법인이 제4의 수급으로 등장했다”고 분석했다.
같은 자사주 매입이라도 효과는 다를 수 있다. SK하이닉스는 40조원어치를 취득한 뒤 전량 소각할 예정으로, 한화투자증권은 소각 시 주당순이익(EPS)이 약 3.8% 높아질 것으로 추산했다. 삼성전자의 현재 15조원 매입은 임직원 주식보상이 목적이다. 다만 김동원 KB증권 리서치본부장은 “3분기 현금 배당 이후에도 주주환원 잔여 재원이 80조원에 달해 연내 추가 자사주 매입ㆍ소각과 현금 배당이 기대된다”고 전망했다.
결국 자사주 매입ㆍ소각만으로 지속적인 주가 상승을 담보하기는 어렵다. 신한투자증권은 자사주 매입 기업 중 12개월 선행 자기자본이익률(ROE)이 높은 기업일수록 초과성과가 뚜렷했다고 분석했다. 이정빈 신한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자사주 정책은 지배구조 이슈이지만, 주가의 지속성을 결정하는 것은 여전히 실적 체력”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