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온다'의 남자주인공 김무진 역을 맡은 배우 하석진이 극중 전 연인인 한규림(안희연)을 바라보며 울먹이고 있다. [사진 KBS]
김무진(하석진)이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8년 동안 잊지 못한 옛 연인 한규림(안희연)이 자신에게 돌아오고 싶다고 고백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미 다른 연인이 생긴 김무진은 규림을 밀어낸다. “조금만 더 일찍 찾지”라고 원망의 말을 쏟아낸 그의 커다란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괴로움에 일그러진 얼굴을 감싸 쥔 그의 손이 떨렸다.
‘울보’ 남자 배우들의 절절한 멜로 연기가 안방을 울리고 있다. KBS2 주말연속극 ‘사랑이 온다’의 주연 배우 하석진은 엇갈린 인연에 주말마다 운다. 극초반 다소 진부한 ‘신데렐라 서사’와 여주인공 안희연의 어색한 연기 등으로 비판이 일었지만, 하석진이 울기만 하면 반응이 터졌다. 극 중 김무진이 한규림의 뒤늦은 고백에 눈물을 보인 11, 12회(지난달 29일, 30일 방영)에서는 16.6%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자체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너 말고 다른 연애'의 남자주인공 남궁호 역을 맡은 배우 서강준. [사진 KBS]
장기 연애 커플의 사랑을 그린 ‘너 말고 다른 연애’(KBS2)에서는 주인공 남궁호 역할을 맡은 배우 서강준의 연기가 화제다. 준비하던 영화가 번번이 무산되며 자존감이 떨어진 상태에서 이별을 고하는 이미도(안은진)를 붙잡는 장면(2회)에서는 “그 끝이 엉망진창이 되도 너랑 가고 싶다”는 절절한 고백을 뱉어내며 눈물을 흘렸다. 평생 빚으로 자신을 괴롭힌 어머니에게 신장을 이식해 준 후에는 이미도에게 안겨 소리내 엉엉 울기도 했다(4회). “일곱 살부터 스물아홉 살까지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던 남궁호가 일곱 살이 되어 울었다”는 이미도의 독백처럼.
지난 12일 종영한 MBC 드라마 ‘유부녀 킬러’에서는 킬러 유보나(공효진)의 남편 권태성 역을 맡은 배우 정준원이 순애보 어린 열연을 선보였다. 그간 킬러라는 사실을 숨겨온 아내의 정체를 알아챈 정준원은 술에 취해 보나에게 “나 사랑한 건 맞아?”라며 애써 눌러왔던 슬픔을 터뜨렸다. 마지막 회에서 정체가 발각된 후 사라진 보나를 찾아내 “집에 가자”며 울먹인 것도 권태성이었다.
'유부녀 킬러'에서 킬러 유보나를 사랑하는 남편 권태성 역을 맡은 배우 정준원. [사진 MBC]
소위 ‘꽃미남’으로 불리는 남자배우들의 눈물 연기 계보는 20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가을동화’(2000, KBS)의 원빈과 송승헌, ‘발리에서 생긴 일’(2004, SBS) 조인성, ‘미안하다 사랑한다’(2004, KBS) 소지섭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엔 ‘눈물의 여왕’(2024, tvN) 김수현, ‘폭싹 속았수다’(2025, 넷플릭스) 박보검 등의 오열 장면이 화제를 모았다.
공희정 평론가는 “올 상반기 ‘참교육’ ‘김부장’ 등에서 보여준 남성들의 강한 액션이 주를 이뤘다면, 하반기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받고 때로는 무너지는 모습을 세밀하게 보여주는 남성 주연들의 연기가 돋보이고 있다”며 “남성의 강인함에 대한 고정관념이 옅어지면서 눈물 연기 역시 동성에겐 나도 울고 싶다는 공감을, 여성에게는 상황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주는 좋은 연출적 장치가 된다”고 말했다.
2000년의 드라마 '가을동화'의 주연 배우 (왼쪽부터)원빈, 송혜교, 송승헌.
눈물 연기 신은 대사, 배경 설명 없이도 감정을 전달할 수 있어 짧은 영상 콘텐츠로 재가공되기 쉽다는 장점도 있다. 실제로 하석진의 눈물 연기 신은 ‘현 시점 울리고 싶은 남자 1위’ ‘하석진이 울자 댓글이 쏟아진 이유’ 등의 제목이 달린 쇼츠, 릴스로 확산되고 있다. 백상예술대상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은 지난 20일 ‘울지마, 아니 울어요’라는 제목의 게시물에서 서강준의 눈물 연기 장면을 게재하기도 했다.
하재근 평론가는 “배우가 온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눈물·콧물 흘리며 감정에 몰입하는 장면은 배우의 연기력에 대한 호평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신규 시청자를 이끄는 또 하나의 포인트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