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고양시에 거주 중인 직장인 채모(34)씨는 둘째 출산 계획을 보류할지 고민하고 있다. 경기도 예산 삭감 때문에 첫째를 출산할 때 지원 받았던 산후조리원 비용을 못 받을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채씨는 “산후조리비용 등이 올라서 첫째 낳을 때보다 출산에 몇 백 만원씩 더 드는데, 휴직하면 소득이 줄어 이 비용을 감당하기가 막막하다”면서 “갑자기 지원을 끊으니 애를 낳으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경기도가 재정난을 이유로 일부 민생예산을 삭감하려 하자 도민들의 반발이 잇따르고 있다. 29일 경기도의회 등에 따르면 도의회는 기존 예산안보다 5465억원을 삭감한 42조2420억원 규모의 경기도 2차 추가경정예산을 일부 수정해 최종 예산조정안을 마련하고 있다.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지난달 5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경기도청 브리핑룸에서 열린 '경기도 재정상황 관련 기자회견'에서 재정 비상 선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경기도는 올해 본예산을 편성하면서 재정난을 이유로 노인장기요양급여와 학교 무상급식 등 3300억원 규모의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해당 사업에 쓸 재원이 올해 9월까지만 잡혀있었다. 반발이 커지자 경기도는 재원 마련을 위해 기존에 있던 산후조리비와 교통약자 이동 지원 등 예산 5465억원을 삭감한 2차 추경안을 지난달 19일 도의회에 제출했다. 기존 복지 예산을 삭감해 부족한 또 다른 복지 예산 재원으로 돌려막겠다는 취지다.
갑작스러운 예산 삭감 가능성에 도민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가장 반발이 가장 심한 건 산후조리비와 산후도우미 지원금 항목이다. 원래 경기도는 산후조리비 명목으로 출생아 1명당 50만원 상당의 지역 화폐를 지원했다. 또 소득분위에 따라 최대 1860만원의 산후도우미 지원금을 제공해 왔다. 하지만 이번 경기도 추경안에 따르면 10월부터는 산후조리비 지원이 전면 중단되고 중위소득 150% 초과 가정엔 산후도우미 지원금도 끊긴다.
임신한 사람들은 유예 기간 없이 당장 10월 이후 출생아에 지원을 없애는 건 부당하다며 반발한다. 경기 고양시에 거주하는 오모(34)씨는 “산후조리비와 산후도우미 지원을 기대하고 임신했는데, 내년 2월 태어날 둘째에겐 지원이 중단된다니 당황스럽다”며 “10월 이후 출생아들을 경기도가 사실상 내다 버린 것”이라고 했다.
경기도 홈페이지엔 올해 10~12월에 태어나 지원금을 못 받는 이른바 ‘끼인 아이들’을 구제해 달라는 내용의 청원에 대해 현재까지 2만6000여명이 동의했다. 아내가 11월 출산을 앞뒀다는 청원 글쓴이는 “출생일이 한두 달 늦다는 이유로 4분기 출생아들은 차별받게 됐다”며 “사전 예고나 충분한 유예기간 없이 지원을 중간에 뚝 끊는 건 도민에 대한 기만”이라고 적었다.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사)전국장애인이동권연대 경기지부가 지난달 25일 경기도의회 앞에서 장애인 이동권 예산 삭감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경기장차연
일부 취약계층은 예산 삭감이 생계에 직접적 타격을 줄 것을 우려한다.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경기장차연)는 경기도가 장애인 특별교통수단을 운영하는 이동지원센터 운영비를 줄인 것에 반발하고 나섰다. 척추손상장애가 있는 정기열 경기장차연 공동대표는 “전동휠체어를 타는 중증 장애인은 일반 택시나 버스를 타기 어려워서 특별교통수단이 간절하다”며 “지원금이 끊기면 장애인의 자립과 안전이 위협받는다”고 했다.
서울 시내 한 산후조리원 신생아실에서 한 관계자가 신생아를 돌보고 있다. 연합뉴스
환자 단체는 간병비 지원 삭감을 걱정하고 있다. 경기도의회 보건복지위원회에 따르면 경기도의 간병비 지원 사업인 ‘간병 SOS 프로젝트’ 지원금은 이번 2차 추경에서 44.7% 감액됐고, 지원 대상은 1800명에서 1225명으로 줄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간병은 환자와 가족에게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치료 과정에 필수적인 돌봄”이라며 “간병 SOS 프로젝트 지원 대상이 간병비 부담이 큰 저소득층 노인인 만큼 지원금 축소는 치명적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예산 삭감에 대한 불만은 추미애 경기도지사를 향한 사퇴와 탈당 청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15일 ‘추미애 도지사님 자진하여 당적을 버리시길 바랍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이 경기도 홈페이지에 올라와 사흘 만에 1만2680명이 동의했다. 도지사 사퇴 청원은 11일 올라와 15일 종료되기까지 3만여명이 찬성했다.
불만이 커지자 도의회는 경기도가 제출한 2차 추경안에서 감액·미편성된 일부 예산을 복원한 예산조정안을 두 차례 도에 전달했다. 하지만 추 지사가 “결국 빚을 더 내고 지역개발기금을 쓰자는 것인데 하루에 이자만 3억 8000만원씩 부담해야 한다”며 거부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도의회 경기도청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위원회는 이날 오후 소집돼 최종 예산조정안을 마련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