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서울시 마포구 마포중앙도서관에서 열린 한국출판인회의의 출판·AI 정책포럼. 사진 한국출판인회의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한 양산형 도서, 이른바 ‘딸깍 도서’에 대응하기 위한 출판업계의 첫걸음을 뗐다. 출판사와 작가의 AI 사용 원칙을 정한 건데, 그러나 아직까지 권고 사항이고 추상적인 부분이 많아 첫걸음의 의미는 아직 크지 않다.
한국출판인회의는 29일 오후 서울 마포중앙도서관에서 ‘AI 시대 출판 생태계가 나아갈 길’이라는 제목으로 정책포럼을 열었다. 지난 4월 ‘딸깍 도서’ 문제가 알려지면서 이에 대한 대응책을 모색하기 위해 열린 긴급 포럼의 후속 성격이다. 당시 참석자들은 AI 활용 여부를 명확히 밝히는 ‘출판물 표시제’ 도입을 촉구했다.
이번에 열린 포럼에선 5개월간 연구와 논의 끝에 마련한 ‘출판사와 저작자의 AI 사용 원칙’이 발표됐다. 5장 20조로 구성된 원칙의 핵심은 AI 관여 정도에 따라 ‘인간 저작물’ ‘AI 보조 저작물’ ‘AI 생성 출판물’로 나누고 출판물에 표시 방식을 달리 하도록 한 것이다.
‘인간 저작물’은 AI를 단순 교정·교열, 개요 짜기 등의 용도로만 사용한 경우로 별도 표시는 안 해도 된다. ‘AI 보조 저작물’은 인간이 창작한 내용을 AI로 보완한 경우 또는 AI 생성물에 대해 최종적으로 인간의 통제와 검증을 거쳐 완성된 저작물로 따로 책에 표시하도록 권고했다. ‘AI 생성 출판물’은 인간의 통제와 검증이 부재한 출판물로 이 또한 표시를 하도록 했다.
박정인 덕성여대 AI 다이나인포(DynaInfo) 연구소 교수가 29일 서울시 마포구 마포중앙도서관에서 열린 한국출판인회의의 출판·AI 정책포럼에서 기조발제를 하고 있다. 사진 한국출판인회의
또 사용 원칙에는 작가가 출판사에 원고를 제출할 때 AI를 얼마나 활용했는지 사전에 알려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출판사가 도서를 AI 학습 데이터로 활용할 경우, 작가 등 권리자에게 이를 안내하고 동의를 받고, 정당한 보상이 이뤄지도록 노력한다는 내용도 있다.
한국출판인회의는 “출판사들이 자발적으로 AI 사용 원칙을 문서로 마련한 사례는 세계적으로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제도화까진 아직 갈 길이 멀다. 이날 발표된 사용 원칙은 출판사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권고 사항이다. 관련 제도가 마련되기 전에 출판계 스스로 현장의 약속을 마련한 정도의 성격인 것이다. 아직은 조항들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점도 한계다. AI 표시제가 가능하려면 출판사가 AI 활용 정도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하지만, 얼마나 사용했는지 확인하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부분이다. 사용 원칙에는 ‘출판사가 AI 활용 정도를 1차적으로 확인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정도만 담겼다.
이날 발표된 원칙에는 한국출판인회의 등 12개 출판 관련 단체가 참여했다. 주요 단체 중 하나인 대한출판문화협회는 빠졌다. 출판인회의 관계자는 “대한출판문화협회에는 교재나 문제집을 만드는 출판사도 많은데, 단행본 출판사가 관심이 많은 AI 표시제 등에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다”면서 “향후에는 함께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