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여름 독일 프랑크푸르트.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컴퓨터 유럽 판매 책임자였던 이명우(72·당시 삼성전자 차장·사진) 전 동원그룹 부회장에게 “가전 하던 사람이 왜 여기 있어요”라며 날 선 질문을 던졌다. 외부 전문가를 채용할 참이었던 이 회장은 회의에서 “당장 원래 자리로 돌려보내요”라고 경질을 지시했다.
이 전 부회장은 “제가 보기에 가전이 건어물이라면, 신제품 주기가 몇 주 만에 바뀌는 컴퓨터는 생선 장사입니다. 이제 감을 잡았으니 생선 장사 제대로 한번 해보겠습니다”라고 했다. 컴퓨터 시장의 변화 속도를 ‘신선도’에 비유해 맞받아친 것이다. 이후 이건희 회장은 그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는 게 이 전 부회장의 설명이다.
올해 초 은퇴한 이 전 부회장은 1977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소니코리아 사장, 한국코카콜라 회장을 거쳐 동원그룹 부회장으로 48년 기업에서 일한 전문경영인이다. 최근 『아웃사이드 인(OUTSIDE IN)』을 펴낸 그는 책 제목처럼 “외부자의 시선으로 조직을 진단하고 답을 찾아야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웃사이드 인’의 시작은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소한 문제에도 트집을 잡던 독일 바이어가 방한했을 때다. 참다못한 상사가 ‘육개장과 육회 같이 외국인이 먹기 버거워하는 한식을 먹이라’고 지시했다. 그는 다른 길을 택했다. 유럽인에게 익숙한 육류 요리 ‘타르타르’와 헝가리 전통 고기 스튜인 ‘굴라시’를 떠올렸다. 육회를 ‘한국식 타르타르’로, 육개장을 ‘한국식 굴라시’로 소개해 바이어의 문화적 눈높이를 맞췄다.
동원산업 사장 시절엔 태평양 선단을 찾았다. 선원들이 두 배 사이에 위태롭게 걸쳐진 좁은 나무판자를 오가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는 “사장이 방문한다고 하니 바로 안전망과 손잡이를 설치했다”며 “책상머리에서의 지시보다, 현장 확인 자체가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였다”고 회고했다.
그는 후배 기업인들에게 경영의 4가지 원칙을 화두로 던졌다. ▶자기 업(業)을 제대로 정의하는 것 ▶나의 고객이 누군지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는 것 ▶경쟁자가 누군지를 파악하는 능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