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잘 죽는 법’ 고민하던 의사, 낯선 땅 가더니…30년 뒤 놀라운 일

중앙일보

2026.09.29 13:00 2026.09.29 22:06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치과 진료 중인 강지헌씨. 사진 본인

치과 진료 중인 강지헌씨. 사진 본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지만 그래도 이 세상을 돌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한국에서 1만1000㎞ 넘게 떨어진 아프리카 남동부 말라위에서 치과 의원을 운영하는 강지헌(66)씨는 지난 30년간 우크라이나·몽골 등으로 활동지를 옮겨가며 의료봉사를 해왔다. 강씨는 29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을 외국에서 하는 것일 뿐”이라며 자신의 30년 봉사 인생을 이렇게 설명했다.


━
남편은 환자 돌보고, 아내는 아이들 교육…30년 사랑 베푼 부부

그가 고국을 떠나 의료봉사의 길에 들어선 것은 30대 중반이던 1990년대다. 국내에서 치과를 운영하던 강씨가 해외에 눈을 돌리는 계기는 94년 우크라이나 단기 의료 봉사였다. 당시 그는 ‘어떻게 하면 잘 죽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때 부인 주수경(66)씨가 장기 해외봉사를 제안했고, 강씨도 망설임 없이 뜻을 같이했다.

그렇게 96년 우크라이나로 떠난 강씨는 의료취약지와 고려인 마을 등을 찾아 이동 진료를 펼쳤다. 2001년엔 몽골로 옮겨 치과 의원을 열었다. 주민을 치료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지 치과의사를 키우는 데 힘 쏟았다. 제자들이 스스로 진료하고 병원을 꾸릴 만큼 성장하자 2014년 병원을 이들에게 맡겼다. 현재는 원장 2명, 직원 21명이 근무하는 병원으로 성장했다.

현지 학생들에게 강의 중인 강지헌씨. 사진 본인

현지 학생들에게 강의 중인 강지헌씨. 사진 본인

2015년에는 의료환경이 더 열악한 말라위로 향했다. 당시 말라위에는 치과대학이 없었다. 이곳에서도 강씨는 주민을 진료하는 한편 치과 의료인을 양성했다. 2019년 말라위 최초의 치대가 문을 연 뒤에는 치대생의 임상 교육을 맡았다.

부부의 30년 봉사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자립’이다. 강씨가 현지 의료인을 길러 의료 자립의 기반을 닦을 동안 부인 주씨는 형편이 어려운 아이와 여성들이 스스로 설 수 있게 도왔다. 강씨는 “후원도 필요하지만, 지속가능성을 생각한다면 자립과 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주수경씨가 운영하는 '어머니학교'. 사진 본인

주수경씨가 운영하는 '어머니학교'. 사진 본인

주씨는 아이들이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학비 등을 지원했다. 여성들에겐 재봉 기술 등을 가르쳐 안정적인 소득을 얻을 수 있도록 했다. 몽골과 말라위에선 ‘어머니학교’를 운영하며 여성들이 가족과 자녀 문제를 스스로 풀어갈 수 있도록 돕고 현지 여성 리더도 길러냈다.

부부가 뿌린 씨앗은 또 다른 나눔으로 이어지고 있다. 몽골에서 강씨에게 교육받은 제자들은 말라위의 난민 캠프에서 진행된 의료 봉사에 참여했다. 어머니학교에서도 교육을 받은 참가자들이 다시 다른 여성들을 돕고 있다. 강씨는 제자들이 이웃을 돕는 모습을 두고 “가장 감사한 일”이라고 했다.

제38회 아산상 수상자인 강지헌·주수경 부부. 사진 본인

제38회 아산상 수상자인 강지헌·주수경 부부. 사진 본인

강씨 부부는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아산사회복지재단이 수여하는 ‘제38회 아산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자신을 ‘의료 선교사’라고 말하는 강씨에겐 은퇴까지 약 3~4년이 남았다고 한다. 하지만 은퇴가 봉사의 끝은 아니라고 했다. 강씨는 “(은퇴 후) 귀국하면 이주민 진료를 시작하고 싶은데 그런 뜻을 실현하는 데 상금을 소중하게 쓰겠다”고 말했다.

의료봉사상에는 박철성 박가정의학과의원 원장, 사회봉사상에는 김현수 사단법인 ‘별의 친구들’ 이사장이 각각 선정됐다. 아산상 수상자에게는 상금 3억원, 의료봉사상과 사회봉사상 수상자에게는 각각 2억원이 주어진다. 시상식은 오는 11월 25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아산생명과학연구원 강당에서 열린다.



채혜선([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