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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분 우대합니다” 희한한 패자부활전…이색 채용 띄운 이곳

중앙일보

2026.09.29 13:00 2026.09.29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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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게시된 문명전환종합지 '사상계' 채용 공고. 사상계 홈페이지 캡처

8월 게시된 문명전환종합지 '사상계' 채용 공고. 사상계 홈페이지 캡처



‘실패한 분 우대합니다.’


지난달, 월간 시사잡지 ‘사상계’가 편집장·기자·디자이너 등을 뽑기 위해 낸 채용 공고의 제목이다. 장점을 한껏 부풀린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는 받지 않는다. 대신 실패 이력서와 좌절 경험담을 담은 ‘실패의 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자기 PR과 성공 서사가 넘쳐나는 시대에 더 많이, 더 처절하게 실패한 사람을 뽑겠다는 것이다.


1953년 창간된 사상계는 1970년 정권에 의해 강제 폐간될 때까지 황석영·김지하 등 문인을 발굴하고 동인문학상을 처음 제정하는 등의 발자취를 남겼다. 한국 문학계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도 1964년 사상계에서 처음 발표됐다. 2005년 교수신문이 학자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광복 이후 60년 동안 국내 지성계에 학문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으로 꼽힌 것도 당시 폐간 상태에 있던 사상계였다. 그리고 지난해 4월, 사상계는 55년 만에 복간 소식을 알렸다.


1970년 '사상계'. 사진 사상계

1970년 '사상계'. 사진 사상계


‘실패의 서’로 사람을 뽑은 이번 채용에는 국내는 물론 미국 뉴욕, 프랑스 파리, 일본 후쿠오카 등에서 20대부터 70대까지 약 100명이 지원했다고 한다. 이 가운데 상근기자 2명, 객원기자 20여 명이 선발됐다.


합격자들은 저마다의 실패담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상근기자로 선발된 20대 권구현(필명)씨는 어린 시절 시인을 꿈꿨지만 포기했고, 영화를 전공했지만 영화감독의 꿈도 접은 뒤 지금은 산자락의 한 식당에서 조리사로 일하고 있다고 적었다.


권씨는 실패의 서에서 “전공과 전혀 관련 없는 식당에서 일을 하는 것은 녹록지 않고, 졸업을 못했으니 녹록지 않고, 친구 하나 없는 산자락에서 프라이팬과 양철 식판만 보고 있으니 녹록지 않고, 내년에는 독립하든 방세를 내든 하라는 부모님의 말씀이, 옳지만 또 녹록지가 않다”고 썼다. 그는 28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삶이 점점 실패를 향해서 가고 있다고 느끼던 때 이 채용 공고를 접했고, 밤을 새워 ‘실패의 서’를 작성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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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편집자·전직기자·시조시인 등 선발

지난해 4월 복간한 '사상계'. 사진 사상계

지난해 4월 복간한 '사상계'. 사진 사상계


“저는 태어났을 때부터 실패했다”며 수험생 시절부터 결혼·육아에 이르기까지 인생에서 맞닥뜨린 실패 경험을 적어낸 20여년 경력 출판편집자 김연희씨는 “숱한 실패와 좌절을 겪은 덕분에 순간순간 삶의 진실을 엿본 것 같기도 하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언론사 산업부 기자와 사립대 교직원으로 일하다 일본인 아내와 결혼해 후쿠오카에서 소설가로 활동 중인 30대 방성식씨, 시조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60대 정휘립(필명)씨 등이 객원기자로 선발됐다.


사상계는 왜 이런 ‘사회적 패자부활전’과 같은 채용 방식을 기획했을까. 장백산 사상계 편집인은 “일반 기업 채용에서 선택받지 못하는 청년들이 훨씬 많은 지금 같은 시기에 민간의 지식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사상계는 꼭 시험을 통해 점수가 높은 사람만 뽑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며 “실패한 사람들 가운데 경험과 노하우를 갖춘 진흙 속 보석이 더 많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이아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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