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의 웨스트필드 UTC 쇼핑몰. 에르메스와 샤넬, 불가리가 입점한 남부 캘리포니아의 고급 쇼핑 명소다. 그 한켠에서 다양한 피부색의 직원들이 웰컴 구호를 외치며 음식을 내오고, 손님들은 연신 영상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올린다. 중국 후난(湖南)요리 프랜차이즈 페이다추(費大廚)의 미국 1호점 풍경이다. 시범 운영 기간 평균 대기 줄은 90분을 넘었고, 첫 3주 예약은 진작에 마감됐다.
페이다추 미국 1호점, 현지 핵심 상권을 타깃으로 상장사 규모의 자본을 갖춘 프랜차이즈들이 움직이고 있다. 바이두캡쳐
과거 해외 중식당은 차이나타운이나 화교 밀집 지역에 들어가 저렴한 가격과 푸짐한 양으로 중국인 손님을 상대했다. 지금의 흐름은 결이 다르다. 현지 핵심 상권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상장사 규모의 자본을 등에 업은 프랜차이즈들이 움직인다.
페이다추는 부유층 거주지와 대학가에 인접한 고급 상업 지구에 깃발을 꽂았다. 싱가포르에서는 오차드로드(烏節路)가 중국 요식 브랜드의 첫 번째 선택지가 됐다. 싱가포르 시장의 중국 외식 브랜드 수는 2024년 6월 32개에서 2025년 8월 85개로, 1년 새 2.6배로 늘었다. 현지 상업 부동산 업계는 중국 외식 투자자들이 이미 현지 브랜드와 핵심 상권 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말레이시아에 오픈한 중국 외식 프랜차이즈 라오샹지. 바이두캡쳐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서울에 입성한 중국 프랜차이즈들은 처음부터 건대·대림동 같은 중국인 밀집 지역이 아닌 홍대·명동·강남을 선택했다. C-푸드 열풍이 골목상권을 넘어 주요 상업지구 전반으로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그 선두에 하이디라오(海底撈)가 있다. 한국에 12개 직영점을 운영 중이고, 지난해 매출 1177억 원, 영업이익 202억 원을 기록했다.
서울에 위치한 한 하이디라오 매장 입구. 사진 독자제공
밀크티 브랜드 차지(CHAGEE)는 올 4월 강남 플래그십 스토어와 용산 아이파크몰·신촌점을 동시에 열고 5개월 만에 9개 매장으로 늘렸다. 헤이티(喜茶)는 강남·홍대·명동에 매장을 냈고, 아운티제니(AUNTEA JENNY)는 공정거래위원회에 가맹사업 등록까지 마쳤다. 루이싱커피(瑞幸)는 '루이싱' 상표권과 파란색 사슴 로고 등록을 끝낸 것으로 전해졌다. 진출 준비가 상당히 진행됐다는 신호다.
다음 타자는 본격적인 중식당 브랜드들이다. 중국 계면신문(界面新聞) 통계에 따르면 녹차(綠茶) 레스토랑은 2026년 상반기 해외 매장 22개를 열었고, 연간 30개·수익 4억 위안(약 780억 원) 돌파를 목표로 한다. 쏸차이위 전문점 타이얼(太二)은 상반기에만 해외 35개 매장을 열었다. 라오샹지(老鄕鷄)는 4월 쿠알라룸푸르에 첫 해외 매장을 내고 싱가포르에서는 현지 식음료 그룹 점보와 합작법인(51대49)을 설립했다.
아직 낯선 이름들이지만 규모는 작지 않다. 녹차는 홍콩증권거래소 상장사이고, 타이얼의 모회사 지우마오지우(九毛九)도 홍콩에 상장돼 있다. 라오샹지는 중국 A주 상장에 두 번 실패한 뒤 미국 IPO를 준비 중이다. 이들이 한국 진출을 검토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가격대다. 페이다추 미국 매장의 간판 메뉴 고추볶음 소고기는 32.79달러(약 4만7000원)다. 미국 화우와 유기농 브로콜리를 쓴다. 미국 주류 캐주얼 다이닝의 가격대로 '싸고 양 많은 중식'의 이미지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하이디라오도 강남에서 네 명이 두루 시키면 20만 원을 훌쩍 넘는다. 이제 가격이 아닌 브랜드 경험으로 승부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한국은 중국 외식 브랜드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글로벌 테스트베드'다. K컬처의 후광을 업고 동남아·북미·유럽으로 확장하기 위한 전략적 전초기지라는 계산이다. "한국에서 통하면 글로벌에서 통한다"는 인식이 중국 외식업계에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차이나타운에서 강남으로, 화교 손님에서 한국 MZ 세대로, 저가 볶음밥에서 30달러짜리 볶음요리로. 마라탕·훠궈가 일상식으로 자리 잡은 데 이어 자본력을 갖춘 레스토랑 브랜드까지 핵심 상권을 파고들면 국내 중식과 캐주얼 다이닝 시장 전체가 압박을 받는다. 지금, 한국 외식업계에 주어진 준비 시간은 길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