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워싱턴 앤드류 멜론 강당에서 열린 연방정부 챗봇 '아메리카닷거브'(America.gov) 웹사이트 출범 기념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르면 30일(현지시간)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개발 사업에 한국이 540억 달러(약 72조원) 규모를 지원하는 내용이 담긴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는 사업성이 불투명해 추후 협의 과제로 남겨뒀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투자를 기정사실화해 11월 중간선거에서 알래스카 표심을 잡는 데 활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백악관은 29일 트럼프 대통령이 30일 오후 3시30분(한국시간 10월 1일 오전 4시30분)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함께 발표하는 일정을 공지했다.
백악관은 어떤 내용을 발표할지는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블룸버그·로이터통신 등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총 2000억 달러(약 270조원) 규모에 달하는 한국의 대미 투자 계획을 공개할 예정이며 해당 계획엔 알래스카 LNG 사업에 한국이 540억 달러를 투입한다는 내용이 핵심으로 포함됐다고 보도했다. 발표 자리엔 알래스카를 지역구로 둔 댄 설리번(공화) 상원의원과 닉 베기치(공화) 하원의원, 마이크 던리비 알래스카 주지사 등도 참석할 것으로 전망했다.
트럼프 추진 알래스카 LNG 개발 그래픽 이미지.
알래스카 LNG 사업은 알래스카 노스슬로프 지역에서 추출한 LNG를 약 1300㎞의 가스관으로 앵커리지 인근 부동항인 니키스키까지 운반해 액화한 뒤 수출하는 것이 골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20일 “아시아로 천연가스를 수출하는 프로젝트 가동을 위해 한국·일본에 전례 없는 수준의 자금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한국은 지난해 미국이 관세 인하(25%→15%)를 하는 조건으로 미국에 총 3500억 달러(조선 협력 1500억 달러, 전략적 투자 200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일본이 미국과의 무역 합의를 통해 전략적 투자의 상당 부분을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에 투입할 가능성을 거론해 왔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 전략적투자의 운영 및 관리를 위한 특별법'에 따른 대미투자 사전보고를 하고 있다. 뉴스1
하지만 한국 정부는 알래스카 LNG 사업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2일 국회에 2000억 달러 대미 투자 1호 사업으로 미 텍사스주 엔시날 가스복합화력발전소 건설을 우선 확정했다. 미국 측이 강하게 요구해 온 미국 내 대형 원전 8기 건설과 알래스카 LNG 사업은 추후 협의 과제로 분류했다.
특히 알래스카 LNG 사업은 상업적 합리성을 따져보는 검토 단계라고 알려졌다. 혹한의 알래스카를 종단하는 가스관과 액화시설 등을 새로 지어야 해 사업비가 수백억 달러에 달하는 데다, 장기간 안정적인 LNG 구매처를 확보해야 해 사업상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 왔기 때문이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도 지난해 국회에서 “하이리스크(고위험) 사업”이라고 평가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한 의원은 “알래스카 LNG 사업은 미국 측의 강한 요구에 따라 양해각서(MOU)에 ‘추진 가능성을 모색한다’ 정도의 문구를 넣기로 합의한 것으로 안다”며 “우리로선 상업성 검토를 거쳐 투자하지 않을 가능성도 남겨둔 것”이라고 말했다.
댄 설리번 미국 연방 상원의원(알래스카)이 지난달 알래스카 팔머에서 열린 선거운동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알래스카 LNG 사업을 발표한다면, 여기엔 정치적 목적이 깔려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알래스카는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13%포인트 차로 승리한 우세 지역이었지만, 이번 중간선거에선 안심할 수 없는 곳이 됐다. 상원의원 자리를 놓고 3선에 도전하는 현역 설리번 의원과 민주당 메리 펠톨라 후보가 접전을 벌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에도 “일본과 한국이 있다. 이 모든 사람이 연료를 싣고, 석유를 싣고, 파이프라인을 건설하고, 그 밖의 모든 일을 하기 위해 알래스카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설리번 의원의 당선을 돕기 위해 “알래스카로 직접 갈 것”이라고 밝히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블룸버그는 “이번 발표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대통령직 영향력과 국제 협상 성과를 활용해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을 지원하려는 또 하나의 사례”라며 “경제 상황에 대한 유권자 불만으로 공화당이 역풍에 직면한 가운데 나온 행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8일에도 인도 에사르그룹 산하 메사비 메탈리스가 아이오와주에 150억 달러(약 20조원) 규모 제철소를 건립한다고 발표했다. 아이오와주도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대승을 거뒀지만 이번 선거에선 상원·하원 의원 모두 공화·민주당이 접전을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