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오후 서울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아이돌·연습생 면접조사 결과발표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왼쪽부터 김성현 동서울대 K-POP과 교수, 김여진 한국 K-POP고등학교 교사, 김두나 변호사, 김영만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센터장, 허유정 소우주컴퍼니 대표, 이정문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문선 문화체육관광부 대중문화산업과 사무관. 정은혜 기자.
“너무 저체중이라 생리를 1년 동안 안 했어요. (나중에) 후유증이 확 온 거예요. 데뷔 실패해서 그런가, 우울해졌어요”
“이렇게 살다가는 데뷔해도 숨 막힐 것 같아 그만두고 싶다고 했더니, (소속사가) 위약금 2억원을 얘기하더라고요. 저는 샐러드만 먹었고 1년도 안 됐는데 그렇게 나올 수가 없어요.”
대박 아니면 쪽박.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장밋빛 꿈을 갖고 10대 시절을 투자하는 K팝 아이돌 연습생의 결말이다. 이런 구조는 아이돌 지망생들이 소속사 또는 K팝 학원과 불공정한 계약을 맺고 인권 침해를 당하는 데도, 이를 감시하고 보호할 사회적 장치가 부족하기 때문에 굳어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아이돌·연습생 면접조사 결과발표 토론회’에서 김영만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센터장은 아동·청소년미디어인권네트워크가 2020년 이후 아이돌 연습생 생활을 경험한 이들 16명(여성 11명, 남성 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당시 평균 나이는 22세로, 이들 중 14명은 데뷔조차 해보지 못했다. 이들은 대부분 큰 후유증이 남았다고 진술했다. 한 연습생은 “소속사 대표뿐 아니라 직원들에게도 잘 보여야 했다. 연습생을 연애 대상으로 보는 소속사 직원, 가슴을 강조하는 옷을 입으라는 직원에게 성적 수치심을 느껴도 당해도 대응할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공통적인 문제는 성장기에 강요된 혹독한 다이어트로 인한 영양실조 등 건강 악화, 학교생활 부재와 사생활 감시로 인한 사회적 고립, 연습생끼리 모여 사는 열악한 숙소 환경에서 발생하는 치안 문제와 성범죄 노출, 불공정한 계약으로 인한 위약금, 우울증 등 정신적 문제, 학습권 박탈로 나타났다. 아이돌 연습생 경험이 있는 허유정 소우주컴퍼니 대표는 “각자 상황은 달라도 반복해 나타나는 문제들이 있다. 이런 당사자들의 경험을 참고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토론회 개최 취지를 밝혔다.
조사 대상자들은 평균 15.9세(최저 12.2세)에 아이돌 연습생을 시작해 평균 30개월가량 연습생 또는 아이돌 생활을 했다. 5명은 3년 이상의 긴 시간을 꿈에 투자했다. 이 과정에서 2명은 고등학교 진학을, 6명은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이 기간 계약을 맺은 회사 수는 평균 2.3곳으로 나타났다. 교육과 합숙 훈련, 일부는 성형 수술도 받기에 계약을 해지할 때는 위약금이 발생하지만, 연습생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구조라는 주장이 나왔다. 한 조사 대상자는 “위약금 1억원이라고 들었는데, 외국인은 100만원을 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소송하는 친구들이 힘들어 보여서 5년 넘는 시간을 그냥 날리고 말았다”는 대답도 있었다.
김두나 변호사(아동·청소년미디어인권네트워크)는 “청소년 연습생은 현행법상 근로자가 아니라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예술인 관련법도 일부만 적용받아 사실상 보호받기 어렵다. 보호 장치를 구체화하고 소속사들과 계약을 맺을 때 법적 검토를 해줄 지원 기관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주로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하는 사업이지만, 업계 종사자 규제는 사실 부재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현행법에 따르면, 대중문화예술기획업 사업자 등록을 하려면 2년 이상의 관련 경력과 소정의 교육을 이수한 사람이 임원 중에 있어야 한다. 소정의 교육이란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진행하는 40시간의 온라인 강의가 전부다. 종사자 성범죄 전력 제한, 자본금이나 기술능력 보유에 대한 기준도 존재하지 않은 탓에 최근 5년 동안 6588개(2026년 6월 기준) 업체가 사업자 등록을 했다.
아이돌 연습생이 학교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규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여진 한국 K팝고등학교 교사는 “기획사가 학교 출석을 부담스럽게 여기기 때문에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자퇴를 고민한다. 학생들의 학교생활과 연습생 활동이 조화를 이뤄서 활동을 중단한 이후에도 언제든지 학교로 돌아와서 이후에 진로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성현 동서울대 K팝과 교수는 “현재 있는 제도와 규칙도 작동하지 않는 이유를 봐야 한다. (정부가) 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온라인 교육에 그치는 수준이 아니라 현장에서 인권 준수 여부를 시험하고 평가하도록 제도를 전환했으면 한다”고 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