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 달리 북한은 핵을 가져도 되느냐는 질문에 “(이전과는) 다른 대통령이 있기 때문”이라며 북한의 핵 보유를 현실로 전제하는 것처럼 해석될 여지가 있는 발언을 또 내놨다. 북한의 핵 위협 제거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친분을 더 중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특히 최근 비무장지대(DMZ) 지뢰 폭발 사건으로 한반도 긴장 수위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김정은 관리 능력’에 중점을 두는 트럼프의 접근법은 실질적 비핵화는 뒷전으로 미루는 위험한 합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트럼프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간) 기자들과 만나 “이란은 핵을 가질 수 없다면서 왜 북한은 가져도 되느냐”는 질문에 “흥미로운 질문이다. 대통령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이어 “내가 있는 한 그는 괜찮을 것이다. 그는 나를 존중하고 좋아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대통령이기 때문에 북핵을 제어할 수 있다는 취지다. 트럼프는 “김정은은 내 친구이고, 그는 트럼프를 좋아한다. 아마 내가 김정은이 세계에서 좋아하는 유일한 사람일 것”이라고도 했다.
트럼프는 이어 “그들(조 바이든 정부)은 그것(북한 핵능력 고도화)을 막을 수 있었지만 막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1기 때인 2018~2019년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를 중단시켰다며 이를 외교적 성과로 부각해 왔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 들어 북·미 간 대화가 중단됐고, 이 때문에 북한이 핵능력을 고도화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트럼프는 또 “김정은은 상당한 핵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며 북한의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는 듯한 발언을 이어갔다.
앞서 트럼프는 지난달에도 북한이 “핵무기 57개를 갖고 있다”고 말해 사실상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연구 기관에서는 북한의 핵탄두 보유량을 꾸준히 추산해 발표해 왔지만, 미국의 대통령이 이를 구체적인 숫자까지 들어 언급한 건 전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지난달 24일 미·중 정상회담 뒤 백악관 발표에서는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이 사라졌다. 지난 5월 정상회담 직후 백악관은 양 정상이 “북한 비핵화라는 공동 목표를 확인했다”고 밝혔지만, 이번 정상회담 뒤에는 “북한 문제를 논의했다”고만 했다. 이란과 관련해서는 두 차례 회담에서 모두 두 정상이 “이란은 핵을 가져선 안 된다는 데 합의했다”는 내용을 발표문에 넣은 것과 대조됐다.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마저 전임 정부를 비난하는 소재로 쓰며 비핵화 목표 확인보다 김정은과의 개인적인 유대감을 강조하는 트럼프의 태도는 북·미 대화라는 성과를 위해 북핵 문제 해결이라는 본질을 경시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그래서 나온다.
이날 발언은 북한이 매설했을 가능성이 큰 지뢰가 폭발해 한국 군 부상자가 발생하는 등 남북 간 긴장이 높아지는 가운데 나왔다. 북한은 “서울의 자작극”이라며 책임을 부인하고 나섰다. 강신철 국방부 장관이 이를 “정전협정 위반”으로 규정하며 상응 조치를 예고한 가운데 동맹국의 대통령은 김정은과의 친분을 거듭 강조한 셈이다. 북·미 대화 재개에 대한 트럼프의 집착이 지뢰 폭발 사건 관련 정부 대응을 복잡하게 만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