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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복룡의 신영웅전] 원자력의 선구자 이창건 박사의 별세

중앙일보

2026.09.30 08:04 2026.09.30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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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한국 원자력 산업의 선구자인 이창건(1930~2026·사진)의 부음을 신문에서 보면서 마음이 착잡했다. 남들은 그분을 원자력 학자로 여기지만, 나는 그가 켈로 초창기의 용사였다는 점을 회상했다.

어느 전쟁에서나 정보와 경계는 실전보다 더 소중하다. 그래서 우리는 밤을 새워 적진을 노려보며 “작전에 실패한 장수는 용서받을 수 있지만 경계와 정보에 실패한 장교는 용서받을 수 없다”는 중대장의 훈시를 반복하며 살았다.

미군정기와 한국전쟁 당시 군부가 겪는 고통 가운데 하나는 언어의 장벽과 용모의 다름으로 인한 정보 수집의 어려움이었다. 따라서 극동사령부는 한국에 이미 잠복해 있던 서북청년단 세력을 뽑아 특수 훈련을 시킨 다음 1949년 6월 1일에 북파 공작 목적의 ‘한국연락장교단(Korea Liaison Office·KLO)’을 창설했는데, 이것이 이른바 켈로 부대이다.

이들의 훈련은 가혹했다. 사이판의 전지훈련에서 야생의 삶을 배웠으며, 무당을 찾아가 작두춤을 배움으로써 담력을 기르고, 배신이나 낙오병은 공중에서 추락하여 죽였다. 이들은 북한 전투 시설의 파괴, 요인 암살, 심지어는 유행병의 균주를 탈취하여 보고했다. 그러한 활동 이외에도 그들의 가장 큰 전공은 인천상륙작전에서의 전위부대 역할을 한 것이었다.

본디 비밀리에 추진된 점조직이었으므로 규모나 신상 파악이 어렵지만, KLO의 연인원은 5000명 전후로 추정되며, 그 가운데 3000명이 작전 중에 순국하거나 귀순 실패로 북한에 잔류했다. KLO는 휴전이 성립된 뒤 1954년 4월 3일 8250부대로 개편함으로써 사실상 활동은 끝났다. KLO가 극우 단체라 하여 비난하는 좌파가 있으나, 조국 전선 앞에 산화한 그들의 충정은 병역 기피를 위해 손가락을 자르고 국회의원 하는 무리에 견줄 바가 아니다. 국군의 날 78주년을 보내며 문득 그들의 영령을 회상한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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