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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반도체판 ‘캄보디아의 덫’ 해결해야

중앙일보

2026.09.30 08:10 2026.09.30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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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산업부 기자

이영근 산업부 기자

‘디스플레이, 배터리, 그다음은 반도체구나.’

추석 연휴를 앞두고 경기 고양시 법원도서관에서 20년 치 기술유출 판결문을 훑어보며 든 생각이다.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까지 디스플레이와 배터리 산업에서 벌어졌던 일이 2020년대 들어 반도체에서 그대로 반복되고 있었다. 대상만 바뀌었을 뿐 중국의 치밀한 ‘기술 사냥’은 현재 진행형이다. 반도체 업계에선 창신메모리(CXMT)가 고대역폭메모리(HBM) 기술자들까지 노린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당연히 처벌은 강화돼야 한다. 중앙일보가 분석한 반도체 기술유출 사건에서 실형을 받은 사람들의 평균 형량은 30.9개월에 그쳤다. 부정경쟁 분야 공인전문검사 출신 황우진 변호사는 “아무리 입법을 하고 수사를 해도 법원이 꿈쩍하지 않으면 답이 없다”고 지적했다.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하지만 기술 유출 사례를 쫓고 전문가들을 만나며 더 선명해진 것은 결국 사람의 문제라는 점이다. 처음부터 산업스파이가 되려고 중국행을 택한 엔지니어가 얼마나 되겠나. 처음엔 높은 연봉과 좋은 직책을 제안받고 정상적인 이직이라고 받아들인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기존 연봉의 몇 배를 주는 데는 이유가 있다. 공짜는 없다.

이 대목은 ‘캄보디아의 덫’을 떠올리게 한다. 고수익 일자리에 혹해 동남아 지역으로 갔다가 어느 순간 보이스피싱 등 범죄를 요구받고 빠져나오지 못하는 구조다. 삼성전자 18나노 기술유출 사건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은 전모씨는 CXMT 전 최고경영자가 “삼성전자 공정 설계도와 설비 정보를 안 가져오면 한국 정부에 고발하겠다”며 협박했다고 진술했다. 한번 호랑이 등에 올라타면 마음대로 내려오기 어렵다.

실제 기술 유출 연루자들은 언젠간 덜미가 잡혀 수년에 걸쳐 수사와 재판을 받으며 돈도 잃고 인간관계도 끊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가족을 위해 타지로 떠났는데 정작 단란했던 가족까지 무너지는 역설이다.

그렇다고 애국심에만 호소할 일은 아니다. 사람과 기술의 이동을 100% 막을 수도 없다. 국가의 역할은 댐에 가깝다. 원하는 시점과 속도로 기술을 흘러가게 관리하고, 기업은 그사이 더 앞선 기술로 격차를 벌려야 한다.

산업보안의 처음과 끝은 결국 사람을 지키는 일이다. 기업은 기술인재를 제대로 대우해야 하고, 당사자도 해외 경쟁사가 왜 거액을 제안하는지 자문해야 한다. 돈에 현혹돼 불법의 길을 걷는 순간 어떤 파국이 기다리는지 법과 제도, 사회가 명확하게 그리고 끊임없이 알려줘야 한다.





이영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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