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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록의 은퇴와 투자] 기다림의 가치와 상속 전략

중앙일보

2026.09.30 08:12 2026.09.30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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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록 옵투스자산운용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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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을 뒤로 미루는 것은 수동적인 행위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상당한 가치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 전국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오사카성(城) 전투다.

130년에 걸친 일본의 전국시대를 끝내고 통일을 이룬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1614~1615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와 오사카성에서 맞붙었다. 당시 히데요리는 22세였고 이에야스는 72세의 노장이었다.

기다림은 미래 권리 확보하는 것
자녀에 증여 미루면 선택권 생겨
재산 일부만 증여하는 것도 방법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히데요리 측에서는 성 안에서 시간을 끌며 버티자는 의견이 있었다. 오사카성에는 식량이 충분했고, 고령인 이에야스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도 알 수 없었다. 따라서 성을 지키면서 기다리면 전세가 달라질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히데요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강경한 전쟁을 선택했다. 결과적으로 전쟁에서 패배하고 히데요리는 자결한다. 그리고 이에야스는 오사카 전투에서 승리한 이듬해 세상을 떠난다. 히데요리가 조금만 기다렸으면 일본의 역사가 달라졌을지 모를 일이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비슷한 일을 볼 수 있다. 갑자기 다른 보직으로 발령받은 뒤 그만둘지 고민하며 조언을 구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필자는 “3~6개월은 직접 경험해보고, 그래도 아니다 싶으면 그때 결정하라”고 말하곤 했다. 당장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시간을 두고 정보를 얻은 뒤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다림의 핵심은 지금 결정하지 않고 상황을 지켜본 뒤 미래에 유리할 때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는 데 있다. 경제학에서는 이러한 가치를 ‘실물옵션(real option)’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미래가 불확실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며, 나중에 선택할 수 있고, 현재의 선택을 되돌리기 어려울 때, 기다림이 주는 권리는 가치가 생긴다.

상속도 마찬가지다. 재산을 지금 자녀에게 넘기지 않고 미래로 미루는 것은 단순히 상속을 늦추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선택권을 보유하는 행위가 된다. 부모에게 갑자기 큰 병이 생겨 목돈이 필요할 수 있고, 자녀의 결혼이나 해외 이주 등 가족의 상황이 크게 달라질 수도 있다. 장수와 질병이라는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노후에 미래의 선택권은 특히 중요하다.

상속을 늦추는 데는 또 하나의 가치가 있다. 바로 자녀에 대한 통제력과 협상력이다. 부모가 재산을 모두 일찍 물려주면 이후에는 자녀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경제적 수단이 없어진다. 반대로 일정한 재산을 보유하고 있으면 부모는 자신의 노후를 보호하면서 자녀의 행동을 유도할 수 있다. 필요할 때 자녀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자녀 역시 부모의 재산 이전 가능성을 고려해 부모와의 관계에서 전략적 행동을 하게 된다. 상속은 단순한 재산 이전이 아니라 부모와 자녀 사이의 전략적 행동과도 연결되는 것이다.

이처럼, 상속을 미래로 미루는 데는 두 가지 가치가 있다. 하나는 실물옵션(real option)으로서의 가치다. 미래의 상황을 관찰하면서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기다림의 가치이다. 다른 하나는 전략적 가치다. 부모가 일정한 재산을 보유함으로써 가족관계에서의(특히 자녀와의 관계에서) 협상력을 유지할 수 있다.

물론 상속을 미루고 기다리는 데는 비용이 따른다. 절세(節稅)의 기회가 줄어들고, 자녀의 삶을 빨리 궤도에 올릴 기회를 놓칠 수 있다. 자녀 입장에서 ‘언제 상속받을지 모르는 요원한 재산’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상속 재산의 전략적 가치가 줄어든다. 상속 재산에 대한 자녀의 따가운 눈총도 견뎌야 한다.

해법은 모든 재산을 한꺼번에 물려주거나 끝까지 움켜쥐는 것 중 하나가 아닐 수 있다. 단계적 증여가 하나의 방법이다. 필요한 만큼 먼저 증여하고, 이후 자녀의 상황과 부모의 노후를 관찰하면서 추가 증여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한 번의 결정으로 미래를 확정하지 않고, 여러 차례에 걸쳐 선택권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상속에서 중요한 것은 세금만이 아니다. 불확실성이 커진 시대에서는 기다림의 가치도 감안해야 한다.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 미래의 통제권과 선택권을 사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김경록 옵투스자산운용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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