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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하고 돈 좀 있는 사람인가”…소장품 꺼낸 RM의 고백

중앙일보

2026.09.30 13:00 2026.09.30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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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에서 온 기자들 앞에서 인사말 하는 RM, 샌프란시스코=우정아 포스텍 교수

전세계에서 온 기자들 앞에서 인사말 하는 RM, 샌프란시스코=우정아 포스텍 교수

RM 소장품으로 구성된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 MoMA)의 특별전 ‘RM x SFMOMA: 너와 나 사이’가 베일을 벗었다. 오는 10월 3일 오픈을 앞두고 29일(현지시간) 미디어 프리뷰와 VIP 프리뷰를 연달아 열었다. 우정아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미술사학 박사)가 먼저 다녀왔다. 우 교수가 보내온 리뷰와 현장 사진에 이어 이번 전시에서 공동 큐레이터로 데뷔한 RM의 인사말 전문을 싣는다. 권근영 기자
RM 소장 윤형근의 '무제'(1986~90)와 SF MoMA 소장 마크 로스코의 'No.14, 1960'(1960)이 나란히 걸린 마지막 전시장. 샌프란시스코=우정아 포스텍 교수

RM 소장 윤형근의 '무제'(1986~90)와 SF MoMA 소장 마크 로스코의 'No.14, 1960'(1960)이 나란히 걸린 마지막 전시장. 샌프란시스코=우정아 포스텍 교수

윤형근 옆에 마크 로스코가 걸리고, 20세기 미국 화가의 호랑이 그림과 17세기 조선시대 호도(虎圖)가 한 벽에 있고, 도상봉이 그린 월미도 풍경이 조지아 오키프의 조지 호수 풍경과 함께 있는 전시장을 누가 상상할 수 있었을까. 오는 10월 3일 문을 여는 SF MoMA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의 'RM x SFMoMA: 너와 나 사이 (Between You and Me)'는 그동안 전통적인 미술사와 보수적인 미술관에서 쉽사리 넘지 않았던 국경과 시대, 언어와 문화 ‘사이’의 경계들을 아무렇지 않게 허물어낸 전시다. 이번 전시는 BTS의 리더이자 미술 컬렉터 RM(김남준)의 소장품 142점과 SF MoMA 소장품 36점을 한자리에 선보인다.
강요배의 ’봄잠’(왼쪽부터)과 17세기 ‘호도’, 조선 후기의 고양이 민화와 웨인 티보의 ‘광대와 짐승’이 나란히 걸린 전시장에서 작품을 카메라에 담는 기자들.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강요배의 ’봄잠’(왼쪽부터)과 17세기 ‘호도’, 조선 후기의 고양이 민화와 웨인 티보의 ‘광대와 짐승’이 나란히 걸린 전시장에서 작품을 카메라에 담는 기자들.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SF MoMA의 관장 크리스토퍼 베드포드(Christopher Bedford)는 "우리 소장품이지만 나 자신도 대부분이 처음 보는 작품들"이라고 했다. 1935년 미서부 최초의 근현대 미술관으로 문을 연 SF MoMA는 현재 3만6000여점의 소장품을 헤아리는 대형 미술관이다. 지난 2년여의 시간 동안 RM이 SF MoMA의 공동 큐레이터인 아메리카 카스티요(América Castillo)와 김효은이 함께 작품을 고르고 기획했다. 약 0.1%의 확률로 선택된 SF MoMA의 36점은 RM의 소장품과 은은하게 공명하는 같은 결의 작품들이다. 일곱 개 섹션으로 나뉜 전시는 대중 앞에 서면 ‘BTS의 RM’이지만, 그 외의 시간에는 ‘서른둘의 김남준’이 되는, 한 사람을 드러내 보여준다.
미술관 밖에서 RM을 기다리며 취재진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건네는 팬들. 샌프란시스코=우정아 포스텍 교수

미술관 밖에서 RM을 기다리며 취재진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건네는 팬들. 샌프란시스코=우정아 포스텍 교수

첫 작품은 김환기의 점화다. 먹처럼 번지는 푸른 점들을 가운데 두고, 먼 밤바다 위, 밝은 별빛 아래 섬 하나가 떠오른 듯, 색점이 찍힌 1970년 유화다. '파아란 물'이라 이름 붙인 이 첫 방에는 이처럼 은근한 ‘블루’와 눈이 시리게 쨍한 ‘인터내셔널 클랭 블루'(프랑스 화가 이브 클랭이 1960년대 명명한 자기만의 고유색), 그 사이의 다채로운 푸른색이 물처럼 흐른다.
'친구가 있는 풍경'에 자리 잡은 그의 친구들은 의외로 동물과 풍경이다. 강요배의 ‘봄잠’은 아지랑이 피어나는 봄의 잔디밭에서 곤히 자는 검은 고양이를 그렸고, 19~20세기작으로 알려진 작가 미상의 수묵채색화는 화면에서 등을 돌리고 관객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는 고양이 두 마리를 그렸다. 이 그림 앞에서 RM은 자꾸 웃음이 난다고 했다. 사람 대신 동물에서, 그리고 말없이 조용한 산과 바다 풍경에서 친구를 찾는 걸 보니 RM은 ‘강아지파’가 아닌 ‘고양이파’인 게 틀림없다.
집처럼 아늑하게 꾸며진 전시장 한켠에 윤광조의 현대 도자와 분청사기가 함께 놓였다. 샌프란시스코=우정아 포스텍 교수

집처럼 아늑하게 꾸며진 전시장 한켠에 윤광조의 현대 도자와 분청사기가 함께 놓였다. 샌프란시스코=우정아 포스텍 교수

'집'은 글자 그대로 소파·테이블·식탁처럼 일상을 함께하는 가구인 양 미술이 곳곳에 스며든 집의 풍경이다. 작은 벽면 하나는 점화 이전 매화와 백자에 매료됐던 김환기와 소담한 산과 마을을 아주 작은 화폭에 담은 장욱진이 차지했다. 정갈하게 서 있는 진열장에는 윤광조의 현대 도자와 14~15세기의 분청사기 등이 함께 놓였다.
뒤를 이은 '사람들'과 '열정'에서는 사람에 대한 RM의 애정과 연민, 존경과 동경이 묻어난다. 그는 집에 자신의 얼굴 사진을 두지 않는다고 했다. “무대에서 수많은 시선을 받으며 늘 ‘얼굴’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미술관에서만큼은 타인의 얼굴을, 그 얼굴을 그리거나 사진에 담아낸 예술가의 눈으로 본 그 사람을, 오래 바라볼 수 있다. 아내를 담은 피에르 보나르와 구성수, 연인을 그린 모딜리아니와 한영수, 익명의 군중을 그린 이응노와 멀찍이서 행인을 바라본 오치균의 작품 앞에서야 비로소 RM은 ‘보여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바라보는 사람’이 될 수 있는 모양이다. '포토붓다!'의 작은 방에 백남준의 ‘TV 부처’를 둔 것도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이 중첩됐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한국은 20세기 예술계에 백남준을 내놓았고, 21세기 예술계에 김남준을 낳아줬다.
RM 소장 이승조의 '핵 88-19'(벽면 회화)과 SF MoMA 소장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의 '무제(미국 #1, 맨 오른쪽 전구)'이 함께 걸린 전시장. 샌프란시스코=우정아 포스텍 교수

RM 소장 이승조의 '핵 88-19'(벽면 회화)과 SF MoMA 소장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의 '무제(미국 #1, 맨 오른쪽 전구)'이 함께 걸린 전시장. 샌프란시스코=우정아 포스텍 교수

RM이 미술에 빠지게 된 건, 작품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뒤의 사람 때문이었다. 그는 예술가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고 그들의 절망과 좌절, 실패와 고난에 마음을 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예술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들에게 끌렸다. 이성자, 박래현, 김윤신, 최욱경, 강서경은 그에게 “멈출 수 있을 때마다 멈추지 않는 쪽을 고른” 이들이다. 전시의 마지막 방을 윤형근의 ‘다색(茶色)’에 바친 것도 험난했던 그의 삶과 울분을 조용히 한 겹씩 올려 담은 '청다색(Blue-Umber)'에 깊이 매료됐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색면추상화가인 마크 로스코와 윤형근을 나란히 둔 것 또한 RM의 선택이다. 그는 “로스코의 어둠이 ‘열리는’ 어둠이라면, 윤형근의 어둠은 한껏 버텨낸 뒤에 남는 어둠”이라고 썼다. 맑은 파랑에서 시작한 전시는 윤형근의 아주 작은 그림이 어둠 속에 떠 있는 마지막의 작은 방에서 끝을 맺는다.
RM의 한국 미술 컬렉션은 시대적으로는 5세기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1500년에 걸쳐 있다. 지리적으로 한반도 안에서 만들어졌을 뿐 이 긴 세월의 산물들이 단일한 문화권에 속한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을 일관되게 엮어 둔 건 “너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그 많은 다름에도 불구하고 대화를 이어가 보려는,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천진한, BTS의 RM이자 서른둘의 김남준이다.
샌프란시스코= 우정아 포스텍 교수 (미술사학 박사)

방탄소년단 RM의 ‘RM x SFMOMA’ 미디어 프리뷰 스피치 전문 (한국어 번역본, 빅히트 뮤직 제공)
안녕하세요. 좋은 오후입니다. 진심으로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제가 이렇게 연설을 하는 게 오랜만이라서요. 네, 좋습니다. 안녕하세요. RM입니다. 공동 큐레이터로서는 오늘이 제 데뷔인데요. 긴장되네요. 자, 시작해보겠습니다.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 하는 RM. 샌프란시스코=우정아 포스텍 교수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 하는 RM. 샌프란시스코=우정아 포스텍 교수


우선 저는 굉장히 혼란스러운 사람입니다. 아마 나중에 아시게 될 거예요. 아, 음악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연설문을 한 열 번 정도 고친 것 같아요. 그런데 늘 그렇듯 고치면 고칠수록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졌습니다.

8년 전 처음 미술관에 다니기 시작하고 작품을 보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당연히 오늘 같은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개인과 보편, 동양과 서양, 모던과 컨템퍼러리 같은 것들에 대해 많이 이야기해왔는데요. 이제 정말 전시 개막을 앞두고 있으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사실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그냥 재미있고 좋은 전시면 되는 것 아닌가.

2년 전 군대에 있을 때 SFMOMA로부터 처음 진지한 제안을 받았습니다. 정말 좋았죠. 물론 당시 제가 군대에 있었기 때문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오는 제안이라면 어떤 것이든 반가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제가 꿈꾸는 공간을 열기 전에 좋은 경험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규모와 위상을 갖춘 곳에서 재미있는 것을 해볼 수 있겠다 싶기도 했죠. 그래서 아주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다만 그 순수함 때문에 수백 장의 작품 설명을 쓰고 지우고 또다시 쓰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지금 여기 서서 여러분께 이야기하는 이 순간에도 저는 늘 어딘가를 표류하고 떠다니는 듯한 기분을 느낍니다. 미국에 있을 때도 그렇고 제가 태어나고 자란 한국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아시다시피 썩 유쾌한 감정은 아닙니다. 그래서 그런 감정 때문에 미술에 많이 의지했던 것 같습니다. 미술과 음악은 언어와 매체는 조금 다를 수 있지만 결국 같은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둘 다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니까요.

그리고 저는 어렸을 때부터 무언가를 모으는 걸 좋아했습니다. 동시에 죄책감도 느껴집니다. ‘내게 필요하지도 않은 이렇게 많은 것들을 정말 짊어지고 살아야 하나?’, ‘결국 그냥 지루하고 돈 좀 있는 사람이 돼버린 건가?’ 뭐,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이것들을 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 컬렉션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제 컬렉션의 상당수는 한국 근현대 작가님들의 작품입니다. 그리고 그중 많은 이름은 아직 한국 밖에서는 낯설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여러 사람들의 컬렉션을 보면서 한 사람이 오랜 시간 돈과 삶, 노력, 심지어 집의 벽까지 내어주며 만들어온 컬렉션만큼 그 사람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도 드물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는 꽤 긴 자기소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조금 부끄럽기도 하지만, 사실 저도 가끔은 제가 왜 이 모든 것들을 모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한 섹션의 이름을 그냥 ‘I Don’t Know, But I Like It’이라고 지었어요. 그게 제 솔직한 마음입니다.

마찬가지로 저는 늘 스스로의 한계를 느낍니다. 때로는 제 자신이 굉장히 자랑스럽다가도 또 굉장히 부끄러워져요. 그 사이를 계속 오갑니다. 결국 저는 저 이상이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가장 중요했던 질문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 번째는 ‘이것이 정말 나를 움직이는가?’였고 또 하나는 ‘2026년 바로 지금 이 작가와 이 작품이 여전히 우리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있는가?’였습니다.

모든 것이 너무 빠르게 소모되는 시대에 저는 과거 몇몇 예술가들의 태도가 오히려 오늘날 더 깊이 울림을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서로 다른 장소와 시간, 경계와 배경이 모두 조화롭게 뒤섞이는 모습을 늘 꿈꿔왔습니다. 물론 엉망이 될 수도 있겠죠. 저는 미술사를 정식으로 공부한 적도 없고 큐레이터도 아니니까요. 하지만 어떤 분야든 때로는 아웃사이더가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기도 하잖아요. 저는 미술계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조금은 자유로운 것 같아요. 대신 작품 설명을 100단어 안에 맞추는 훈련은 전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게 제일 어려운 부분이었죠. 그래도 즐기려고 했습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한국은 식민지배와 전쟁, 그리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발전을 겪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것들이 사라졌지만 동시에 놀랍고 빛나는 것들도 만들어졌습니다. 그 한국의 젊은 세대로서 저는 조금 더 새롭고 젊은, 어쩌면 조금이나마 더 나은 관점과 감각을 보탤 수 있기를 바라며 작품을 수집해왔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것이 이번 전시로 이어졌습니다. 작품을 고르는 것부터 배치하고 심지어 표구하는 것까지 그동안 제가 좋다고 느꼈던 것들과 조금 더 좋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모두 한데 모으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전시를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흥미롭고 새롭게 만들려고 했어요. 여러분도 그걸 느끼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영광스러운 기회를 주시고 약 2년 동안 저를 도와주신 SFMOMA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멋진 아이디어를 처음 제안해준 공동 큐레이터 아메리카 카스티요(América Castillo), 샌프란시스코의 많은 분들에게 한국 미술을 소개해주신 공동 큐레이터 김효은 님, 그리고 안팎의 전반적인 소통을 맡아주신 한재영 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전시는 기본적으로 저와 SFMOMA의 협업이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제가 꿈꿨던 모든 것들을 다 실현할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저희 무덤에 묻어버린 재미있는 아이디어들도 많았습니다. 솔직히 제가 꿈꿨던 걸 전부 실현했다면 아마 큰일이 났을지도 모르죠. 저는 그것이 협업의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미술계 출신이 아닌 한 개인이 여기까지 올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기쁩니다.

부디 즐겁게 봐주시고,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샌프란시스코에도 큰 박수를 보냅니다.




권근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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