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9월 30일(현지시간) 영국박물관에서 열린 KH컬렉션 순회전 갈라 디너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한국 예술 문화의 2000년 역사를 유럽에 소개하는 자리에 글로벌 반도체 기업 거물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삼성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영국박물관에서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한국: 2000년 창의의 여정(Korea: 2,000 years of Creativity)’ 개막을 기념하는 갈라 디너를 열었다고 1일 밝혔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해 영국 정·재계와 문화계 인사 240여명이 참석했다. 홍라희 리움미술관 명예관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도 함께했다.
이날 행사에는 삼성전자와 첨단 반도체 분야에서 협력하는 유럽 기업·연구기관 경영진이 자리했다. 크리스토프 푸케 ASML 최고경영자(CEO), 카이 베크만 머크 CEO, 안드레아스 페허 자이스 CEO, 패트릭 반데나멜레 아이멕 CEO 등이다.
네덜란드 기업 ASML은 첨단 반도체 회로를 새기는 데 필요한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공급한다. 머크와 자이스는 각각 반도체 소재와 정밀 광학 분야에서 삼성전자와 협력하고 있다. 벨기에 연구기관 아이멕은 차세대 반도체 기술을 공동 연구하는 파트너다. 한국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행사가 반도체 장비·소재·연구 분야 핵심 파트너들과의 교류 자리로 이어진 모습이다.
영국 왕실의 앤 공주는 만찬에 앞서 열린 리셉션에 참석해 개막을 축하했다. 카니슈카 나라얀 영국 인공지능(AI) 장관과 BT그룹·보다폰·스탠다드차타드 등 기업 경영진도 참석했다. 옥스퍼드대와 임페리얼칼리지 런던, 테이트모던과 V&A 박물관 관계자 등 학계·문화계 인사들도 함께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인사말에서 미술품의 ‘소유’보다 ‘보존’에 의미를 둔 선대의 철학을 소개했다.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이 문화유산을 가꾸고 후대에 전한다는 신념으로 수집을 시작했고, 이건희 선대회장은 이를 이어 평생 작품을 보존하기 위해 힘썼다고 설명했다. 모친인 홍라희 명예관장에 대해선 고대부터 현대까지 컬렉션의 범위를 넓히는 데 헌신했다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앤 공주, 조지 오스본 영국박물관 이사회 의장(사진 맨 왼쪽)과 함께 KH컬렉션 순회전 갈라 디너에 참석한 6·25 참전용사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이 회장은 “저희 가족은 여러 세대에 걸쳐 예술과 문화는 보존하고 함께 나눠야 한다는 원칙을 지켜왔다”며 “이번 전시가 2000년에 걸친 한국의 창의성과 문화유산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에게도 감사를 전했다. 이 회장은 이날 참석한 마이크 로 등 영국 참전용사 3명에게 존경을 표했다. 지난 7월 부산 재한유엔기념공원을 찾아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린 앤 공주에게도 감사 인사를 건넸다.
국립중앙박물관·국립현대미술관·영국박물관이 공동 기획한 이번 전시는 영국박물관에서 1984년 이후 42년 만에 열리는 대규모 한국 미술 특별전이다. 이건희 선대회장 유족이 국가에 기증한 작품들이 워싱턴DC와 시카고를 거쳐 유럽 관람객을 만난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앤 공주, 앤 공주의 남편 티머시 로런스 경이 KH컬렉션 순회전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삼성에 따르면 앞선 미국 두 도시 전시에는 총 19만5000명이 다녀갔다. 워싱턴 약 8만 명, 시카고 약 11만5000명이다. 워싱턴 전시는 최근 10년간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 특별전 가운데 가장 많은 관람객을 기록했다.
지난 1월 워싱턴 전시 폐막 기념 갈라 디너에는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웬델 윅스 코닝 회장 등 250여 명이 참석했다. 당시 미국 정·재계 인사들을 맞았던 이 회장은 이번에는 런던에서 유럽 반도체 협력사 경영진과 교류했다. 선대가 수집하고 유족이 기증한 문화유산이 한국 미술을 알리는 동시에 국제 교류의 매개가 되고 있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