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번 국도 명소 바그다드 카페 동명 작품 촬영 이후 인기몰이 코로나 이후 해외 관광객 격감 31년 운영 여주인 올해 초 타계
지난 8월 바그다드 카페를 방문한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카페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에릭 세이어/LA타임스]
40년 전 컬트 영화로 인기를 끈 ‘바그다드 카페(Bagdad Cafe)’는 모하비 사막 뉴베리스프링스의 허름한 식당에서 촬영됐다.
외딴 사막을 배경으로 한 두 여성의 이야기는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총을 들고 카페를 운영하는 억척스러운 여성과 여행 가방에 전통 독일 의상을 넣고 다니던 길 잃은 독일인 관광객의 이야기는 특히 유럽과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해외 관광객들은 뜨겁게 달궈진 66번 국도의 갈라진 도로를 따라 버스를 타고 실제 바그다드 카페를 찾아왔다.
실제 카페 주인 안드레아 프루엣은 강인하면서도 다정한 여성이었다. 그는 나이가 들면서 현실을 인식하는 능력이 점차 흐려졌지만, 카페를 떠나기를 거부했다.
현재 바그다드 카페는 존폐의 기로에 놓여 있다. 티셔츠와 기념품은 여전히 판매되고 있지만, 주방은 문을 닫았다. 프루엣의 가족은 앞으로 이곳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다.
드론으로 촬영한 뉴베리스프링스의 외딴 바그다드 카페(맨 앞 건물) 전경. [에릭 세이어/LA타임스]
유럽에서 온 관광버스는 여전히 이곳을 찾는다. 올해 100주년을 맞은 66번 국도를 따라 여행하는 관광객들도 찾아온다.
카페 매니저 마크 브래들리는 “지역 주민들은 오지 않고 지금은 음식도 만들지 않는다”며 “하지만 사람들이 찾아볼 만한 곳으로 지도에 확실히 남아 있다. 이곳에서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카페 내부는 사막 한가운데서 강렬한 색채를 뿜어낸다. 천장에는 세계 각국의 국기가 걸려 있고 벽은 방문객들의 사진과 서명한 달러 지폐로 빼곡하다.
프루엣도 여전히 그곳에 있다. 그녀의 유골을 담은 단지는 현관문 옆에 놓여 있다.
1995년, 영화가 유럽에서 개봉한 지 8년 뒤 프루엣과 남편 해럴드는 당시 ‘사이드와인더 카페’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식당에 들렀다. 바스토우에서 동쪽으로 20마일 떨어진 뉴베리스프링스에 있던 식당이었다. 두 사람은 당시 타조 목장을 운영하려 했지만, 사업에 실패했다
식당 주인은 두 사람에게 식당을 매물로 내놓았다고 말했다. 프루엣은 2003년 LA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남편이 나를 쳐다보길래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마’라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당시 배우로 활동하던 26세 아들 해럴드 P. 프루엣 주니어는 이 카페를 “멋진 곳”이라고 했고, 결국 가족은 식당을 인수했다.
프루엣 부부는 독일 출신 영화감독 퍼시 애들런이 영화에서 사용한 이름을 따라 식당을 ‘바그다드 카페’로 바꿨다.
인근의 바그다드는 1880년대 남태평양철도 관계자들이 중동의 대도시 이름을 따서 붙인 철도 마을이었다. 사막 지형을 고려해 ‘H’를 뺀 ‘Bagdad’라는 철자가 사용됐다.
캘리포니아 히스토릭 루트66협회의 전 회장 스콧 피오트로스키에 따르면 바그다드는 증기기관차가 사막 기후에서 약 8마일마다 물을 보충해야 했기 때문에 기차가 정차하는 곳이 됐다.
작은 마을은 금, 은, 구리 광산촌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광산업이 쇠퇴한 뒤에도 66번 국도를 달리던 차들이 물을 구하기 위해 바그다드에 들르면서 식당들이 생겨났다.
1972년 바그다드에서 북쪽으로 약 10마일 떨어진 곳에 40번 주간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66번 국도의 차량과 관광객 대부분이 빠져나갔다. 이는 바그다드에 치명타가 됐다.
프루엣은 자신의 바그다드 카페에서 영화의 명성을 활용했다. 독일인 관광객은 마술 묘기를 선보이며 많은 사람을 카페로 끌어모은다.
프루엣은 ‘바그다드 카페’ 감독이 서명한 기념품들을 보여주곤 했다. 영화에 등장한 것과 같은 노란색 보온병도 갖고 있었다. 커피포트가 고장 난 상황에서도 이상하게 커피가 계속 나오는 바로 그 보온병이었다. 그녀는 영화의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던 주제곡 ‘콜링 유(Calling You)’를 주크박스에서 틀어놓았다.
바그다드 카페엔 모나코의 알베르 2세 국왕도 한 차례 들렀고, 배우 르네 젤위거도 방문했다.
사막에서의 삶에는 많은 어려움도 따랐다. 1990년대 어느 날 밤, 프루엣이 카페를 인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한 남성이 들어와 각목을 카운터에 내리치며 돈을 가방에 넣으라고 요구했다. 프루엣의 손자 그레그 랜더스(47)는 “할머니는 카운터 아래 뒀던 산탄총을 꺼내 ‘멈춰’라고 말하며 장전했다”고 전했다.
남성은 두 손을 들며 가족과 여행 중 돈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프루엣은 이들을 안으로 들여보내 음식을 먹이고 현금까지 건네준 뒤 돌려보냈다. 단, 그들에게 직접 설거지를 하게 했다.
프루엣은 힘들고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랜더스는 프루엣을 “지나칠 정도로 친절한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2002년 2월 프루엣의 둘째 아들이자 배우였던 해럴드가 약물 과다복용 사고로 사망했다. 두 달 뒤 남편도 세상을 떠났다. 프루엣을 계속 버티게 한 것은 손님들에 대한 사랑이었다고 브래들리는 말했다. 그는 26년 동안 이 카페를 단골손님이자 직원으로 지켜봤다. 그는 “사람들은 카페를 나갈 때 눈물을 흘리곤 했지만, 행복해서 흘리는 눈물이었다”며 “프루엣은 손님을 안아주고 몇 분 동안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을 그렇게 만들었다. 그녀에게는 마법 같은 힘이 있었다”고 말했다.
2020년 여름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봉쇄 조치는 바그다드 카페와 당시 80세가 된 프루엣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 유럽 관광객들이 사라졌고, 누군가 창문을 부쉈다. 프루엣은 직원들을 내보냈고 주방은 문을 닫은 뒤 다시 문을 열지 못했다.
2021년에는 프루엣의 집이 불에 탔다. 그녀는 카페 안 빨간색 비닐 좌석에 몸을 웅크린 채 잠을 잤다.
같은 해 배우 지망생 레아 드 카르모가 우연히 카페를 찾았다. 프랑스 출신인 드 카르모는 프루엣과 두 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눴고, 이후 4년간 LA와 뉴베리 스프링스를 오가며 프루엣의 말년을 촬영했다. 이 영상은 최근 다큐멘터리 ‘바그다드 카페의 수호자(The Keeper of Bagdad Cafe)’로 완성됐다.
프루엣은 나이가 들면서 기억력이 크게 떨어졌지만, 카페를 떠나려 하지 않았다. 손자 랜더스는 LA에서 함께 살자고 권했지만, 프루엣은 “여기가 내 자리”라며 거부했다고 전했다.
2023년에는 열대성 폭풍 힐러리로 오래된 카페 지붕이 크게 손상됐다. 빗물이 내부로 쏟아졌지만, 유튜버 사라 제인 우달의 구독자들이 2만5000달러 이상을 모금해 새 지붕을 마련했다.
카페를 지키던 프루엣은 결국 올해 1월 85세로 세상을 떠났다. 현재 카페는 관광객들을 위해 문을 열고 있지만, 음식은 팔지 않는다. 매트 파커 매니저에 따르면 좋은 날에는 관광버스 3대가 찾아온다. 파커는 “이곳은 다시 만들어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우리는 이곳을 잠시 맡아 관리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박물관이자 교회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프루엣의 유골함은 여전히 그녀가 가장 사랑했던 카페 현관 옆에 놓여 있다. 가족들은 앞으로 카페를 어떻게 보존할지 결정할 예정이다.
랜더스는 영화의 한 장면을 자꾸 떠올린다. 영화 속 독일 여성은 관광비자가 만료돼 떠나야 하고, 활기가 넘쳤던 식당은 다시 조용해진다. 한 손님이 들어와 마술쇼는 어디로 갔느냐고 묻는다. 졸고 있던 직원이 몸을 일으키며 말한다. “마법이요? 사라졌어요.”
영화 마지막에는 독일 여성이 다시 바그다드 카페로 돌아온다. 그리고 사람들도 다시 몰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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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은 9월 22일자 ‘A cult film made this lonely desert cafe famous. Now, it’s fighting to survive‘ 기사입니다.